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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노예 김험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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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를 보면 왕족, 귀족, 양반, 상민, 천민, 노예 등의 계급이 있었으며 태어날 때부터 신분을 타고 났다.

왕족은 왕의 형제와 그 후손, 귀족은 군호를 받은 공신이며 양반은 벼슬에 오른 문관, 무관을 일컫으며, 중이이라고도 부르는 상인은 의관, 관상감, 역관, 기술직 벼슬을 하였다. 천민은 성도 이름도 없는 갑바치, 즉, 소·닭 등 천한 일을 하는 계급으로 중인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동구 밖에서 천민들 낄 모여 살며 중인이나 양반들이 사용하는 말이 아닌 천민 전용어가 있어 왔다.

노예는 관가나 군영, 양반가의 소속된 천민들을 말하며 공신들에게는 노예를 몇 명씩 재산으로 나라에서 하사하였고, 벼슬의 계급에 따라 노예의 수도 달랐으며 노예를 관리하는 관청인 장례원이 있어 문서로 매매하기도 했다. (포로·역적 및 그들의 후손들이 노예였다)

‘이험산’은 진사 이수온의 노예였다. 병자호란 때 상전을 말에 태우고 가평에 피란을 갔는데 적평이 갑자기 들이닥쳐 다른 사람들은 도망갔으나 주인인 이수온은 늙고 병들어서 어린 자식들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었다.

이 꽝경을 본 이험산은 자신의 자식들은 친자식이었으나 버려 두고 주인인 이수온의 자식들을 업고 피란을 했다. 산나물을 뜯어 먹여가며 주인과 주인의 자식을 찾아 봉양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발은 동상에 얼고 발가락이 떨어지는 고통을 겪었으나 나태함이 없었다. 주인 수온 진사네 가족은 물론 노예(종) 이험산의 가족도 모두 난리가 평정된 뒤까지 고장산 밑에서 평안히 살 수 있게 되었다.

주인 진사 이수온은 이험산의 고맙고 눈물겨운 정성에 감복하여 노예문서를 모두 불태워 버리고 해방시켜 주는 은덕으로 갚으며 병자호란 난리 통의 신세를 갚으려 하였다.

그러나, 주인 이수온을 종신토록 받들며 살았다. 또 이험산은 나라에도 충성을 다하여 80세까지 살면서 관직이 절충장군에 이르렀다(정3품:당상관). 자손들은 대대로 노예신세를 면하고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중인(상민)이나 노예는 양반같이 문관 벼슬은 할 수 없었으나 군인은 될 수 있었으며 지금의 사병인 갑사 하사 등의 부사관을 할 수 있었으며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충성을 다하면 양반이 되어 높은 벼슬에 이르기도 하였다. 유명한 장영실도 관가에 노예였으나 공을 세워 높은 벼슬에 올랐던 인물이며 군인 중에는 중인·노예 출신도 많았다.

대개 전장이 나면 노예들이 대궐이나 양반가에 불을 지르고 산골짝이나 함경도·평안도로 도망쳐 국경지대에 살았다. 그러나 내 고향 이험산 같은 떳떳하고 훌륭한 인물도 있었다.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1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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