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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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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전국시대 진(秦)나라 재상 이사(李斯)를 만나게 된다. 사기 이사열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초(楚)나라에서 자그마한 군(郡)의 하급관리로 일하면서 세월만 축내고 있던 그는 어느날 쥐 두마리를 유심히 보면서 삶의 원리를 깨닫게 된다.
이사가 살펴 보니, 뒤깐에 있으면서 더러운 것만 먹는 쥐는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 도망쳤으나, 곡식 창고 안에 있는 쥐는 가득 쌓인 깨끗한 곡식을 먹으니 사람이나 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되자 이사는 크게 한탄한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의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다." 즉 사람이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려 있다는 재소자처(在所自處)라는 말을 남기게 되었다.
이사의 탄식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현자(賢者)가 되고 군자(君子)도 되는데, 어떤 사람은 하류 인생이 되어 우민(愚民)과 소인(小人)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이사는 출세를 위해 모험을 실천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곧바로 진(秦)나라 승상 여불위를 찾아가 그의 사인(舍人) 즉, 집사가 되었고 다시 진시황에게 소개되어 궁궐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장사(長史)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진시황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공을 세워 객경(客卿)벼슬에 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의 시기, 모함, 견제로 강력한 반발에 부딛쳐 물러나야 할 처지에 몰린 그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저 유명한 인재 개방론을 들고 나오게 되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논리를 내세워 위기를 모면하고 진시황의 핵심 측근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과욕으로 인해 진시황의 유서를 위조하는데 가담하는 등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 주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그래서 역사에는 국가에 없어야 할 나라를 망친 간신의 표본으로 남게 되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 재상 이사(李斯)는 22년 동안 진시황의 2인자로서 진시황을 보좌해 봉건제도를 페지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는 등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일대 개혁을 단행하고 시스템을 완성한 큰 업적을 남겼지만 시황제가 죽은 후 환관 조고(趙高)와 공모,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2세 황제로 옹립하고 시황제의 장자 부소(扶蘇)와 장군 몽염(蒙恬)을 자살하게 했다.
얼마 후 조고의 참소(訴)로 투옥돼 함양[咸陽]의 시장터에서 처형됐다. 이런 이유로 그가 남긴 업적은 계승됐지만 그는 나라를 망친 간신의 표본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나라 정치인들이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나라를 망치는 간신인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 후의 아프가니스탄의 참혹한 현실을 보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무리들이 경청해야 할 역사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6·25 때는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절규하며 공산독재와 싸웠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호헌철페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화 투쟁을 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자유민주주의는 목숨을 내놓고 지켜서 후세에 물려주어야 만 한다.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 포천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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