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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 인터넷 서점을 통해 어린 왕자를 구입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지만, 전체적인 내용만을 기억할 뿐 거지만 잊어버렸다. 하지만 어른이 읽는 동화중에 한국어로 번역된 어린 왕자가 100여 종이 넘고, 기독교 성서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어 전 세계 2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려 1억 5천만 부 이상이 팔린 책이다 보니 그동안 여러 글에서 어린 왕자의 내용이 인용 되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 그때마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정부분 대목 대목을 다시 기억나게 하기도 했다.
이번에 구입한 어린 왕자는 그동안 여러 사람에 의해 옮겨진 것 중에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 탁월한 언어학자인 고종석님이 번역한 것인데, 다시 읽으면서 잃어버렸던 순수한 감성들을 다시금 예민하게 불러일으켜 보려고 하지만, 이미 닳고 닳았으며 고착되어버려서 무뎌지기가 무쇠처럼 되어버린 감성이 되살아 날지에 대한 자신은 없었다.
역시나, 처음 네 페이지까지를 읽고 얼마 동안 책을 덮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순수성이 메말라버린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 생각으로 골똘해져서 끝내 헤어나오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 실망해버린 현실 세계에 대한 확인과, 나를 비롯한 어른 들로서는 장시간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회복이 어렵겠다는 자가 진단에서 오는 절망감 때문이였다. 내가 읽고 덮어 놓았던 본문의 내용은 저자인 생텍쥐페리가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뱀을 그린 그림을 보고 어른들의 반응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아마 읽어본 사람들은 기억이 날 것이다.
저자는 여섯 살 때 책에서 본 내용을 가지고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그림이 무서운지“ 물어보았다. 어른들은 “모자가 왜 무서워?”라고 말했다. 어린 생텍쥐페리는 겉모습만 본 어른들이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자 보아뱀의 배 속에서 선 채로 서서히 소화가 되고 있는 코끼리의 모습까지 보여지는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었다. 그것은 어른들이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린 투시도였다. 저자는, 이렇게까지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서 “어른들에게는 늘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림을 본 어른들은 생텍쥐페리에게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보아뱀들을 그리는 것은 그만두고 차라리 지리·역사·산수와 문법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이것이 생텍쥐페리가 여섯 살 때 화가라는 굉장한 직업을 포기하게 된 사정이라고 적었다.
나는 시설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 함께 놀아 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림을 통한 심리검사나 성격유형검사를 하기위한 방법은 전혀 아니다. 그저 아이들과 그러고 있노라면 아이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향 정도를 파악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책을 덮은 이유는 아이들과 그렇게 그림을 그리던 생각이 나서이다. 6살 먹은 ○○이는 길다란 선을 그어놓고 그 중간 쯤에 위와 아래로 혹처럼 나온 그림을 그렸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뱀이 타조알을 먹은 것”이라고 하였다. 또 커다란 네모 한쪽을 불룩하게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돼지뼈를 넣고 끓인 감자탕을 먹은 아저씨의 배”라고 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대답에 깜짝 놀랐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그림은 종이 전체 배경이 온통 깜깜한 곳에 붉은 점과 하얀 점을 찍어놓았다. 아이는 자기가 생각해도 신기한 듯 목소리가 격앙되어 “우주에 있는 꽃밭”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문제는 나의 태도와 생각이였다.
나는 친절하게도 그림은 그렇게 그리는 게 아니라면서 하나씩 하나씩 현실감 있게 그려주고 설명도 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재미 없어 했다. “네, 네” 하며 딴청을 피우거나, 듣는 척하면서 친구와 장난을 치거나, 내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자신의 그림만을 열심히 그려대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의 형태와 본질에 대해서 증명했듯이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고 그렇게 그려야 하는 근거를 따지고 복잡한 예를 들이대고는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를 바랬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더 심드렁해졌다. 아이들이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열심히 설명을 하고, 아이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더욱 골똘히 생각하고 내 딴에는 아주 근사한 듯한 근거라도 찾으면 마치 엄청난 과학 문제나 아이들과는 상관도 없이 국민들이 모두 박수 치며 경탄해 할 이론과 유익한 정책이라도 제시한 듯 혼자서만 만족해하며 득의만면 해하는 정치인처럼 못 되 먹고 찌질하고 졸렬한 웃기는 꼰대 짜장이 되어버린 나를 소환해 냈던 것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서 그 순간 어디로인가 숨고 싶고, 울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려는 생각에 도달한 순간, 더 이상 책을 볼 수가 없어서 덮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덜컥 겁이 났다.
혹시 그 아이들 중에 나로 인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한 아이가 있지는 않았을까? 해서다. 그러면서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런 녀석이 있다면 그 아이는 생텍쥐페리처럼 유명 작가가 되거나 유능한 비행사가 될 것이라고, 위안을 삼기 위한 변명이지만 그 또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라고,
그리고 내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자기들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찌들어버린 세상을 저 아이들이 그린 그림대로의 꿈을 키워간다면 어른들로 인해 혼탁해 져버린 이 사회를 아이들이 반드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순수한 감성이 말라버린 것 같아 매우 슬펏던 일이 또 있었다. 3년 전 친구로부터 손으로 그린 오래된 악보를 하나 받았다. 종이의 빛이 바래고 접힌 곳은 헤져서 곧 떨어져 나갈듯한 상태였는데 그건 한 40년 전쯤 내가 만든 포크 풍의 가요였다. 나는 잊고 있었던 그 오래된 노래, 정서 되지 않은 체로 서툴게 그려진 콩나물들, 그걸 받아든 순간 나는 아주 오래된 추억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친구 입장에서 보면 대단하지도 않은 것을 이토록 오랫동안 가지고 있다가 전해준 친구에게 경이롭도록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였다. 그리고 가사를 보는 순간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됐다.
내가 저렇게 순수한 감정의 글을 썼다니, 요즘도 가끔씩 만든 노래와 가사를 비교해보니 그때 그 옛날에 내가 가지고 있던 낭만과 약간은 나태한 구석이 깃들어 있는 낙천주의, 그리고 비상식적인 생각들과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기발한 시(時)적 어구들을 발견하면서 이즘에 쓴 노랫말 들의 상투성과 특별한 것 없는 단어들, 그리고 이미 고착화 되어 한발도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내게 깃든 타성의 일반화, 더구나 규격화 된 문학적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인위적인 노력들에게서 오는 실망감을 넘은 절망감에 고통 스러웠던 것이다. 그것은 천진난만한 서정성과 무 계산적인 도전정신이 말살되어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절대 현실주의자가 되버린 듯한 나의 초상이 외롭고도 불쌍해서였다.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처음에는 모두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가면서 어린이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간다. 그리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모두가 다 설명해 주어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What I am seeing is nothing more than shell, I can't see what's most precious" 본문중에서....
박창진 /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이사장,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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