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몽량의 유씨는 몽량이 일찍 죽자 고통을 감내하며 자식을 성가시키고 남편의 뒤를 따랐으며, 임영대군의 6세순 이씨는 병자호란 시 적병을 맞아 자결하였으며 노비 가음불의 아내 독실, 김세열의 아내 박씨, 염두찬의 아내 최씨, 이시진의 아내 최씨, 만호 정창국의 아내 유씨 등이 남편의 죽음의 길을 함께 간 열녀문의 주인공들이다. 노예 ‘박귀동’
진잠 현감 이만증의 종이었다. 포천의 청량촌에서 출생하였다. 박귀동은 면천이 되어 이만증의 집에서 풀려나 따로 살았다.
이만증은 진잠현감을 지냈으며 청렴하여 늘 가난하였다. 이만증이 현감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부모님을 일찍 여읜 관계로 물려받은 유산도 없고 하여 여생을 가난하고 쓸쓸하게 살았다.
옛 날 종이었던 박귀동은 상전이었던 이만증을 함께 모시고 살겠다고 하면서 별당을 지어 편히 모시었다. 귀한 옷과 맛있는 음식을 별당에 사는 옛 상전 이만증에게 보내 대접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귀동은 자손들로 하여금 매일 같이 별당에 사는 옛 상전 이만증 전 현감에게 안부 문안 인사를 드리게 하였다.
또, 전 현감 이만증 앞으로 되어있는 논, 밭을 가기 박귀동의 논, 밭에 앞서 먼저 경작하여 올리게 하였다. 어느 날 아들의 실수로 귀동 자신의 논밭에 거름을 먼저 하였다. 이를 보고 놀란 귀동은 아들을 때리면서 “내가 생전에 있을 때도 이와 같으니 죽은 뒤는 알만하다”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즉시, 자신의 논밭에 뿌린 거름을 상전이었던 이만증의 논밭에 옮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어떤 날은 상전이었던 이만증이 병들자 낮밤으로 병구완을 함을 잊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상전이었던 이증만을 먼저 대접하였으며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남에게 베풀고 후덕하고 근면 성실하게 살았다.
그래서 이웃들과 고향 포천사람들이 감화 감동을 받으며 교화를 받았다. 나이 80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면천이 되고 향리 추천으로 벼슬길에 올라 그 벼슬이 가선대부에 올랐다(종2품; 당상관). 더욱이 놀라운 일은 자녀가 10명이요 손자가 백여명으로 번창하여 자손만대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한다.
우리는 노예(종) 출신 박귀동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실제로 포천 출신 천민이나 노예의 후예들은 대부분이 당시 남조선 노동당에 가입하여 공산주의자들의 하수인이 되었으나 옛날, 상전의 후손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귀동 노예의 정신적 유산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