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무척 좋아하지만 영화관에 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예기치 못한 소리에 사로잡혀서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면 되도록 다른 사람들과 멀찍이 자리해서 앉는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음식 씹는 소리가 곤혹스러워서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간다. 하지만 진료도 받기 전에 의료장비에서 나는 전자음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만다. 질병 때문이 아니라 소리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예민한 선택적 소음 과민증후군” 즉 “미소 포니아”라는 병 아닌 병이다. “미소 포니아”는 혐오감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미소드(Misos)와 소리라는 포네(Phone)의 합성어로 미국 에모리대학교의 파웰 자스트레보프와 마가렛 자스트레보프 교수에 의해 2000년에 처음 연구 발표되었다. 두 교수는 1984년부터 이명(耳鳴)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주파수 40~50 데시벨의 낮은 수준의 소음에 대하여 민감성을 보이며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거나 패닉과 공포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서 강박적이 되거나 끝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생활 소음에 대단히 민감한 정서적, 신체적 반응을 보임으로 인해 사회활동뿐 아니라 일상생활까지도 대단히 어려움을 겪는다. 원인이 되는 소음은 대게 반복적이거나 주변에서 흔히 들리는 소리이다.
평소 가까운 친구나 동료가 껌을 짝짝거리며 씹는 소리가 난다든지, 연필을 사각거리며 깎는 소리,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 엘리베이터에 기름이 덜 칠해진 듯 오르내리면서 사는 쇳소리, 커피 등을 훌쩍거리며 마시는 소리, 쩝쩝거리며 무언가 씹는 소리, 또각또각 걷는 구두 소리 등 우리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소리들이다. 그런데 안 들을 수 없는 이런 소리 들을 들으면 그 소리에 차츰 예민해져서 공연히 화가 나거나 심지어 상대를 향한 증오심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가 하면 휘파람 부는 소리나 유리창이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소리, 한밤중에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 그리고 소곤소곤하는 소리를 들으면 불안해지고 공황장애나, 또는 두려움, 분노 등이 일어나며 소리가 지속되면 구토나 이명, 두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심하면 살인이나 자살 충동까지 일어난다고 하니 예삿일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시계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집에 있는 모든 시계를 폐기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소 포니아가 있는 사람이 아무 소리에나 민감한 것은 아니고 건설 현장 등에서 나는 심한 소음이나 자동차의 큰 경적 소리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반응하지 않기도 한다. 소리의 종류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선택적 소음 과민증후군”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이런 증상은 대체로 10세 전후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청소년기를 걸쳐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2015년 미국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학생들 가운데 20%가량이 이 증상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진단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장애라고 규정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이 증후군은 평범한 소리를 혐오하며 지속적이고 특정한 소리에 반응하는 뇌가 어떻게 활성화되는 가의 문제다. 그래서 청각장애라고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심리적 요인으로 규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신장애로 볼 것인지도 규명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미소 포니아는 아직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신경과학자 오게 R. 몰러 박사는 거슬리는 소리를 빨리 제거하거나 가급적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혹은 귀마개를 착용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상쇄시킬 수 있는 백색소음을 듣는 것도 좋다고 한다. 치료를 위하여 심리상담을 통한 행동치료나 심리치료, 소리 요법을 혼합한 방식으로 증상을 극복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 중일 뿐이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미소 포니아 라고 공식적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소 포니아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장점이 있다고 하는데,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구팀은 특정한 소리에 유난히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창조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서는 독창성과 창조성 평가 테스트에서 월등히 좋은 점수가 나왔다고 한다.
지인 중에 미소 포니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외출할 때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귀마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기, 걸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신발, 그리고 가방도 장식이 달려있어서 마찰로 인한 소리가 나는 것은 남들이 다 좋아한다는 세계 제일의 명품이라도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다고 한다. 혹여 이런 것들 중에 하나라도 빼놓고 나가면 집에 들어오는 시간까지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몰라 마음이 불안하다고 하니 미소 포니아에 의한 2차 적인 병리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며느리가 산후조리차 집에 와서 지낸다. 당연히 아들도 함께 있는데 시계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고 건전지를 빼버렸다. 그걸 보면서 내가 “너 장애 아니냐?” 하고 말하고 나니까 옆에 있던 아내가 “당신도 그러시잖아요?” 한다. “아, 그랬네,” 그래서 내가 잠을 자는 방에는 시계가 없다. 뿐만 아니라 비 오는 날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낙수 물소리가 신경쓰여서 깊은 잠을 못들기도 하는 게 나 였었다. 그러고 보면 특정한 사람이 앓고 있다기보다는 누구나 조금씩 그런 성향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소 포니아, “예민한 선택적 소음 과민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 예전 같으면 유난스럽다는 핀잔 정도로 가볍게 여겼을 것인데 지인의 고민을 듣고 나서는 이것이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질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 포니아를 아직 장애 영역에 포함 시키 자고 하는 논의는 시기상조일 것 같다. 원인 규명도 치료 방법도 측정 도구도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인은 그런 말을 한다. “만일 미소 포니아가 정신장애로 규정된다면 자신은 사회적인 낙인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장모님은 올해 88세 시다. 20여 년 전부터 귀가 약간씩 어두워지셔서 TV 소리도 점차 크게 틀어 놓으시고 말씀도 크게 하신다. 물론 일정 데시벨 이하의 소리는 잘 듣지 못하신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 보니 노환이라서 특별한 치료 방법은 없고 보청기를 해 드리라고 한다. 그래서 보청기를 맞추러 가시자고 했더니 한사코 당신은 듣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아주 잘 들리니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면서도 대화 중에 잘 듣지 못하신 말은 되묻기도 하지만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들으신 척하고 넘어가신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으시다. 장모님은 유달리 자존심이 세다. 절대로 자존심 상하는 말씀이나, 행동은 하지 않으신다. 보청기를 마다하시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남들이 자신을 장애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차이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며 평생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으면서 살기도 한다. “장애” 그것은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았던 대못처럼 불편한 사람들의 가슴에 치는 장(長) 못이다. 그래서 되도록 장애라는 명패를 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소 포니아” 별것 아닐 것 같은 질환 때문에 평생 고통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장애라는 또 다른 이름을 달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적, 의료적 도움과 특별한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시기가 오면 장애 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혹시 지금 내 주변에 “미소 포니아”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를 위한 우리의 배려가 필요하다.
박창진 / 사회복지학 박사, 사회복지법인 ”이웃과 함께“ 이사장, 꿈이 있는 마을 원장, 한국문인협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