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무리하지 마라”, “그것은 자충수야” 라는 말을 많이 한다. 무리(無理)란 사리에 맞지 않음을 일컫는 말이며 수(數)는 술수(術數)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자충수(自充手)란 바둑에서 자기가 돌은 놓아 자기의 수를 줄이는 것을 말한다. 상대가 돌을 놓아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돌을 잘못 놓아 자기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왜 무리하면 안 되는가? 사리(事理)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달이 나기 때문이다. 탈이 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돌을 잘못 놓아 자신의 수를 줄이면 상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잔꾀를 부리면 안 되는 이유이다.
무리수를 두거나 자충수를 두고도 저 잘났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정치한다는 사람들의 언행(言行)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곡학아세(曲學阿世)하기를 밥 먹듯이 한다. 곡학아세란 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시세(時勢)나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언행을 말하는 것이다. 곡학아세하는 사름들만 골라 쓰는 게 문제다. 그래서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경륜가(經綸家)의 말에 귀 기울이고 전문가(專門家)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남의 의견이나 충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흘려버린다. 바로 자충수의 전형 아닌가?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말이 있다. 바보처럼 굴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멍청하기가 총명하기보다 어렵다. 가장 어려운 것은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다. 다들 저 잘난 맛에 사니 지거나 물러서기 싫다. 손해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더 갖고 다 가지려다가 한꺼번에 모두 잃는다. 무리하고 자충수 두는 바보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결국은 난득호도의 바보정신이 이긴다는 말이다. ‘선비는 죽은 뒤의 녹을 탐한다(士貪以死後)’고 했다. 살아 내 배 불리는 그런 녹보다 죽은 뒤에도 죽지 않고 따라오는 녹, 후세가 주는 녹, 떳떳하고 의로운 삶 앞에 주어지는 녹을 욕심낼 뿐이다. 사초(史草)가 두렵지 않은가?
일본에 ‘삼간사우(三奸四愚)’라는 말이 있다. 세 명의 간신(奸臣)과 네 명의 어리석은 인물이라는 의미로 도조가 중용하고 의지하던 측근들을 말한다. 리더에겐 충성스러운 측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자리엔 충성심이 아니라 전문성이 용인(用人)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자기 주변을 돌아보고 삼간사우를 경계하는 것이 리더의 덕목(德目)일 것이다. 한나라 유방은 말한다. “지략은 장량보다 못하고, 나라 살림은 소하보다 못하며, 군사를 이끄는 데는 한신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어떻게 황제가 됐겠는가. 이 걸출한 인재들을 적절하게 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이비(似而非)를 조심해야 한다. 콩(菽)과 보리(麥)의 생김새는 사뭇 달라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사리 분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숙맥(菽麥)이란 말이 유래했다. 그러나 농부가 아니면 쉽게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논에서 자라는 곡식인 벼와 잡초인 피다. 일반 사람이 피를 뽑는답시고 벼 포기를 뽑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공자(孔子)도 “비슷하지만(似) 아닌(非) 것을 미워한다. 가라지(피)를 미워하는 것은 곡식 싹을 어지럽힐까 염려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사이비(似而非)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다.
요즘 얼마나 많은 사이비들이 설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숙맥들이 나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이 무리수를 두고 자충수를 두고 있는가?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감언이설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포퓰리즘에 빠져서도 안 된다. 로마가 왜 망했는가? 경륜(競輪)과 써커스로 망했다고 사가들은 말한다. 무리수를 접고 자충수를 거둬야 한다. 경륜가의 말을 들어야 한다.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려나갈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