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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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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광해군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것이다.
미ㆍ중이 서로 세계패권을 다투는 이 시기에 미ㆍ중의 중간에서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결정지어질 중차대한 시기에 문대통령은 한ㆍ미 정상회담을 위해 방미 길에 올랐었다.
정상회담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성공적인 정상회담이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냉철한 현실인식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촉구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ㆍ미 관계는 모든 외교의 근본이요 밑바탕이어야 우리나라가 살아나갈 수 있다.
한ㆍ중 관계와 한ㆍ일 관계는 굳건한 한ㆍ미 관계가 성립된 바탕 위에 존재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재의 미.중과 옛날의 후금과 명나라의 비슷한 광해군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면 한다.비록 반정으로 쫓겨났지만 조선 제15대 왕인 광해군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폭군’보다는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해 전란(戰亂)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구하려 많은 노력을 한 왕"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이복동생을 죽이고 자신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하는 도덕적인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당시 명나라가 망해가고 후금(후에 청나라)이 승승장구하며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장악해 가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간파하고 실리적인 중립외교 정책을 시행했다.
명나라의 파병 요청에 군대를 파병했지만 후금과의 전투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전세(戰勢)가 불리해지면 즉시 항복하도록 5도도원수(五道都元帥) 강홍립에게 밀명(密命)을 내렸다.
강홍립 역시 이런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충실히 따랐다. 강홍립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후금에 바로 항복하고 억류돼 있으면서 후금의 상황을 광해군에게 자세히 계속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바탕으로 광해군은 조선이 후금과 적대 관계를 맺지 않도록 하면서 명나라의 계속된 파병 요청을 적절히 거부했다. 이런 광해군의 뛰어난 중립외교 정책과 강홍립의 활약으로 광해군 재위 기간 동안엔 조선은 후금의 적국(敵國)이 되지 않았고 전란을 피할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623년 이귀, 김유 등 서인 일파가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폐위되고 무능한 인조가 왕위에 올랐다.
서인 일파가 내세운 반정의 명분은 광해군이 이복동생을 죽이고 계모를 폐하는 등의 폐륜(廢倫)을 저지르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조선을 구한 명나라를 버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인 일파는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면 이를 막을 대책과 능력과 의지는 더더욱 없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당시 광해군과 서인 일파 사이에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대화가 이뤄져 서인 일파가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조선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를 알았다면 인조반정도, 정묘호란도, 병자호란도, 삼전도의 굴욕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한ㆍ미 정상회담은 멀어진 한ㆍ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고 좋은 기회였다. 한ㆍ중 관계도 중요하지만 한ㆍ미 관계가 굳건해야 중국도 우리를 막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ㆍ미 관계가 소원해지면 중국은 우리를 중요시 할 필요가 없는 무시해도 되는 천덕구러기가 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돌려 보아야 할 것이다. 한ㆍ미의 굳건한 동맹위에서만 우리에게 유리한 한ㆍ중 관계와 한ㆍ일 관계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여당에서는 남ㆍ북 관계가 많이 개선됐다지만 아직도 북한 핵 폐기와 종전선언 등의 난제(難題) 해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여ㆍ야 정치권은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면서 한ㆍ미 관계를 굳건히 다진 다음에 중국과의 관계를 의연하게 대처해야 될 것이다. 이에 대한 허심탄회한 애국심이 밑바탕이 된 여ㆍ야 정치권의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될 것이다.
많은 희생속에 이룩한 자유민주주의는 꼭 지켜서 후세에 물려 주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 포천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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