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있음에 감사하다(Thank God for the Poets, 뉴욕타임즈 2021. 4. 5)”는 칼럼을 읽으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권리(Birthright, 生得權)에는 고통만 있는 게 아니고, 삶과 사랑, 아름다움이 함께 있음을 기억하자.”는 렝켈(Ms. Renkl)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전 세계인들이 “정신적 건강의 위기(Mental Health Crisis)”에 빠져 있을 때 바로 학습과 공부, 음악과 문학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극은 순간의 웃음만 주지만, 비극은 생각을 하게 하고, 뒤돌아 보게 합니다.
“내가 요즘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러고 있을 때인가? 지금 웃음이 나오는 게 맞는 건가?” 웃기는 개그를 한참 보고 나면 낭비한 시간이 아깝고 허무할 때가 있습니다. 성공과 성취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사나흘이면 사라지지만, 슬픔과 비극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생각을 하게 하고, 고민과 갈등에 빠지게 합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고 후회하면서 사람은 철이 들고 성장을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를 겪었습니다. 실패나 시련이 없이 성공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위로를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꾸면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냅니다.
처음의 실패는 농사짓기 싫다고 연천에서 올라 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거였습니다. 이름도 없는 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두 번째도 역시 입시 실패였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서 포기하기 직전, 길거리에 떨어진 신문쪼가리에서 희망을 주웠습니다. 2차 후기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차에서 떨어진 대학보다 좋은 대학이었습니다. 한숨을 쉬며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교만해질 때쯤, 또 떨어졌습니다. 당시의 한국과학기술원, KIST였습니다. 진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서 “적당한 성공”을 자랑하고 다닐 무렵 한국에 외화위기가 왔습니다. 어느 한 개인의 잘잘못이 아니었지만, 회사는 구조조정의 나락에 빠졌습니다. 30%나 되는 직원들을 명예롭게 퇴직시키고 인사과장은 회사를 떠났습니다.
우연히 읽은 나폴레옹 힐의 “성공의 법칙(The Law of Success)”를 읽고 강의를 하게 되면서 책을 쓰고, 적당히 살만하게 되었을 때쯤, 또 다른 위기가 왔습니다. 곧이어 코로나까지 맞이하였습니다. 이젠 그냥 쓰러져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또 다른 인연이 닿았습니다. 희망과 꿈을 버리기엔 아직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실패와 위기는 번갈아 왔습니다. 아마도 10년~15년 주기로 찾아왔다가 지쳐서 쓰러질 때쯤, 3~5년 힘들게 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즈음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고 인생을 깨달으면서 철이 들 때쯤 또 다른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비극이 준 "생각의 선물"을 놓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