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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희 칼럼] 가정의 달 5월에 생각하는 효(孝)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6일
 
ⓒ 포천신문  
아내를 여의고 홀로사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한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불운이 겹처 빈털털이가 된데다 노약해서 더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결혼한 아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각자 생활이 바빠 일주일에 한번쯤이나 그것도 돌아가며 아버지와 저녁을 같이 먹는게 고작이었다.

아버지는 차츰 기력마저 떨어졌다. 노인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곰곰히 생각했다.
드디어 한 생각이 떠올랐다.

해가 밝자 그는 목수를 찾아가서 큰 궤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다음에 열쇠가계를 찾아가서 큰 자물쇠를 삿다.

이어 유리가게에 가서 깨진 유리조각을 얻어 왔다.

노인은 궤짝을 집으로 가지고와서 그 속을 깨진유리로 가득채우고 난 다음에 단단히 자물쇠로 채우고 그것을 부엌 식탁밑에 놓았다.

며칠후에 아들들이 찾아와서 저녁을 먹다가 발에 걸리는 궤를 발견했다. "궤속에 무었이 들어 있습니까?" 라고 아들들이 물었다.

별것아니라고 노인은 말하면서 끝내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말를 않했다.

아들들은 손으로 밀어봤지만 어찌나 무거운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번에는 발로 차봤다. 그러자 속에서 뭔가 달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한평생을 두고 몰래 저축해온 금화로 가득 채워있는게 분명하다" 이렇게 세 아들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보물궤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세 아들은 번갈아가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하였다.

첫 주에는 작은아들이 와서 살면서 아버지를 돌보고, 둘째 주에는 가운데 아들이, 셋째주에는 큰아들이 아버지를 돌보며 궤를 지켰다.

몇 년 후 아버지가 병으로 숨졌다.

이제부터는 돈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세 아들은 호화로운 장례를 치렀다.
그들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지집으로 달려와서 궤를 열어봤으나 그 속에는 깨어진 유리로 가득했다.

"우리를 이렇게 감쪽같이 속여 오다니 아버지도 너무하셨다." 라고 큰아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양심의 가책을 느낀 둘째 아들은 형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그럴 수 밖에 없었겠지? 만약에 이 궤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 아버지가 돌아가실때까지 돌봐 드릴 생각을 했었겠는가를 생각해 봐야해"

이 말을 들으면서 막내아들은 하염없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큰 아들은 혹시나 해서 궤속의 유리조각을 모두 쏟아 보았다 그랬더니 밑바닥에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고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진심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부양만하는 것을 공자(孔子)님은 견마지양(犬馬之養 )이라 했다. 집에서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니 약 60 년 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옆자리에 있는 친구의 도시락에는 늘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

도시락에 꾹꾹 눌러 담은 밥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어도 그 친구는 조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는 마치 귀한것이라도 건져내듯 정성스럽게 머리카락을 건져내고 식사를 했다.
어떤때는 돌을 깨무는 소리가 났는데도 그냥 밥을 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목이 메어 한동안 아무말도 못하는 적도 있었다. 그런 친구를 볼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어떤 분일까를 연상해가며 그를 딱하게 여겼다.

시골에서 올라온 나는 그 친구와 허물없이 지내는 매우 가까운 친구였으나 그는 자기집에 가자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그가 가난하게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기집에 가자고 했다.

답십리 달동네를 지나 다 쓰러져가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 친구는 "어머니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라고 소리치며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어두운 방안에서 그의 어머니가 더듬거리며 나오면서 반겨 주셨다.

그 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우리 아이한테서 네 이야기 많이 들었다" 고 말씀하시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시는 맹인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왜 친구가 돌이 섞인 밥을 그냥 삼켰고, 머리카락이 들어 있어도 괘념치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나도 아내를 여의고 지금 97세의 훌륭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효를 따로하는 것은 없다.

많이 힘들때도 있지만 미리 예방하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감사하며 내 성품대로 모시고 함께 살어가고 있다.

나는 어머니가 계심이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럽고 든든한지 모른다. 이것이 효가 아닐까.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 /  포천문화원 부원장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21년 05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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