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사람됨의 근본이다. 한자로 겸손할 겸(謙)은 말씀 언(言)과 겸할 겸(兼)을 결합한 글자다. 겸(兼)은 벼 다발을 손에 쥐고 있는 형상으로 ‘아우르다’ ‘포용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격과 소양을 두루 갖춘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말을 공손하게 하는 법이다. 겸손할 손(遜)은 ‘후손에 전하다’의 뜻을 함께 지녔으니 대를 잇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영어로 겸손(humility)의 어원은 흙을 뜻하는 라틴어 후무스(humus)이다. 흙 중에서도 영양분과 유기질이 많은 부식토(腐植土)다. 사람(human)이라는 단어도 흙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겸손은 흙에서 나온 사람을 성장시키는 토양(土壤)이다.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驕慢)이다. 교만은 잘난 체하고 뽐내며 건방지다는 말이다. 교만할 교(驕)는 말 마(馬)와 높을 교(喬)로 이루어져 있다. 말을 높이 타고 아래를 얕잡아본다는 의미다. 병법에서도 교병필패(驕兵必敗)라고 했다. 교만한 병사는 반드시 패한다는 말이다. 거만할 만(慢)은 마음 심(心)과 ‘손으로 눈을 벌려 치켜뜬 모습’의 끌 만(曼)을 합친 것으로 눈을 부라리는 태도를 가리킨다. 영어 거만(haughtiness)이 프랑스어 ‘높은(haut)’에서 왔고 라틴어 어원도 ‘높은(altus)’이니, 이것은 겸손과 상반된 뜻을 지닌 말이 아닌가.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긴 수업시간”이라고 말이다.
황희(1363~1452)는 세종 때 영의정 18년, 좌의정 5년, 우의정 1년을 합쳐 24년간 정승을 지냈다. 이렇게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과 겸손의 덕을 함께 갖췄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몸을 낮췄다. 노비의 아이가 수염을 잡아당겨도 마음 좋게 웃어 ‘허허 정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딱 한 사람, 6진 개척과 여진족 정벌에 앞장선 김종서 만은 예외였다. 북방에서 복귀한 김종서가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는 걸 보고는 “저놈 의자 다리가 한쪽 망가진 모양이니 고쳐줘라”고 따끔하게 혼냈다. 자기 뒤를 이을 재목으로 점찍은 김종서에게 겸손을 가르치려고 일부러 엄하게 대한 것이다.
황희와 함께 조선시대 명재상으로 꼽히는 맹사성(1360~1438)도 겸손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는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이고 돌아갈 때도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이런 자세는 젊은 시절 한 고승에게 배운 것이다. 목민관의 도리를 물었다가 “나쁜 일 말고 착한 일만 하라”는 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에 고승은 찻잔 가득 넘치도록 차를 따르면서 “찻잔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라고 했다. 당황한 그가 황급히 일어서다 문틀에 부딪혔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지요”라고 고승이 말했다.
자고로 ‘위대한 정치가와 CEO들은 아주 겸손하다.’ 탁월한 지도자의 덕목(德目)에 반드시 ‘겸손’이 포함되는 이유이다. 영어로는 지도자를 리더라 한다. 리더(leader)의 ‘리(lea)’는 ‘길(path)’, ‘더(der)’는 ‘발견하는 사람(finder)’을 의미한다. 지도자는 ‘길을 앞서 발견하는 사람(pathfinder)’이다. 신호와 단서를 읽고 길을 발견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곧 진정한 리더다. “최고의 리더는 겸손한 리더”라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위대한 리더, 진정한 위정자들은 자문해야 한다. ‘나는 업무에 관한 다른 사람의 조언을 고마워하는가?’, ‘내가 이룬 성과를 누군가가 무시하면 언짢은 감정이 드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남의 지식과 조언을 구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네”라고 답하는 사람은 겸손한 리더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 할만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사람이 겸손한 리더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식과 조언을 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며, 공을 내세우지 않고 칭찬하며, 동료나 부하의 성취를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위대한 리더요 진정한 위정자란 말이다. 우리 모두가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