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사기(史記-염파 인상여(廉頗 藺相如傳) 인상여는 중국 조(趙)나라 당시, 혜문왕 때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진나라의 15개 성(城)과 조의 화씨벽(和氏璧)을 바꾸자」는 제안을 받고 자청하여 이 화씨벽(和氏璧-이 세상에 하나만 있는 둥글고 티 없이 완벽(完璧)한 옥구슬)을 가지고 진에 갔다가 용기와 지혜로서 대처하여 마침내 도로 가져오는 쾌거를 올려 상대부(上大夫)가 되었다.
그 후 세력이 강한 진나라 소왕이 조나라 혜문왕을 초청하여 두 나라의 국경 면지에서 회합(澠池會盟)을 가지자 했을 때, 인상여가 이를 찬성하고 왕을 수행하였다. 당초에 조왕을 욕보이고 기선을 잡아보려고 벌인 주연이었지만 인상여가 배짱과 기지로 버티고 맞받아치는 바람에 진왕은 시종 조왕을 위압하지 못했다. 이 공로로 인상여는 마침내 상경(上卿)에 오르게 되었다. 환자령(宦者令) 무현(繆賢)의 사인(舍人)에 불과했던 그가 몇 년 사이에 염파보다 높은 직위에 오른 것이다.
한편, 염파는 조의 장수로 제나라를 대파하고 양진(陽晉)을 취함으로 상경(上卿)이 되어 제후들 사이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맹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상여의 지위가 자기보다 높아진 것을 두고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조의 장수로서 국가를 위해 여러 성을 공략하고 야전에서 이긴 공로가 있었건만, 인상여는 단지 세치의 혀를 놀린 노고로 나보다 윗자리에 앉았다. 그는 본디 천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찌 부끄러워 차마 그 아래에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그에게 욕을 보이리라.” 인상여가 이 말을 듣고는 될 수 있으면 염파와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했고, 입조해야 할 일이 있어도 칭병하며 나가지 않았다. 염파와 서열을 다투고 싶지 않은 그는 외출하였다가도 염파의 일행이 보이면 수레를 돌리고 숨어 있곤 했다. 그러자 그의 사인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저희들이 상공을 섬기는 것은 상공의 높은 뜻과 지혜를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염공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욕이 두려워 숨고 피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이런 일은 범인(凡人)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인데 하물며 장군이나 재상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저희들은 이만 물러갈까합니다.” “그래요? 그대들에게 한 가지 묻겠소. 염파장군과 진왕 중 누가 더 위고 두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당연히 염파장군이 진왕만 못하지요.” “보시오. 그 대단한 진왕의 위세 앞에서 나 상여는 어떠했소? 진왕 앞에서 호통을 쳤으며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욕보였소이다. 그러던 이 상여가 아무리 못나도 염 장군을 겁내겠소? 우리보다 강한 진이 지금 우리 조를 처들어 오지 못 하는 것은 왜일까요? 이 인상여와 명장 염파가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이 두 호랑이가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면 저 승냥이 같은 진이 우리 조를 어떻게 생각하겠소? 내가 이리 숨고 피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한과 감정은 다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바로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육단부형),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엎드려 사죄를 청했다. “이 비천한 염파는 상공께서 이처럼 너그러우신 줄 몰랐소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게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그런 사이(문경지교, 刎頸之交)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의 화합으로 한 동안 조는 진의 야욕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하거나 이용한 자료 –[사기 육단부형)] [이야기 고사성어 장기근 박사 감수 육단부형]. 한국민족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