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自律)과 봉쇄(封鎖)라는 말이 요즘처럼 머리를 맴도는 일도 그리 흔치 않다. 봉쇄의 封(봉)은 가다의 뜻인 之(지는 토와 통함)와 흙의 뜻인 土(토) 그리고 손의 뜻인 寸(촌)으로 이루어진 글자로 ‘보호하다’의 뜻을 나타내며 ‘북돋다’의 뜻은 파생되었다. 설문해자(説文解字)에서는 ‘제후로 삼아 토지를 주다[爵諸侯鎖之土也]’라 하였다. 鎖(쇄)는 의미요소로 쇠의 뜻인 金(금)과 발음요소인 쇄가 더해진 글자로 ‘쇠사슬’의 뜻을 나타내며 ‘자물쇠’, ‘수갑’, ‘매다’, ‘잠그다’의 뜻은 파생되었다. 봉쇄는 ‘사람이나 물건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뜻이며 쇄국(鎖国)은 ‘나라의 문호를 닫고 외국과의 통상교역을 금하다’의 뜻이다.
한편 설문해자에서 자율의 自(자)를 코[鼻也]’라 하였다. 自는 코의 앞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 본래 ‘코’의 뜻을 나타내며 이후 가차되어 ‘스스로’의 뜻으로 쓰인다. 자율은 규율(規律)을 말하는 것이다. 집단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행위의 규준(規準)이 되는 사회적 약속(約束)을 뜻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질서유지를 위해 정해놓은 규칙(規則)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율법(律法)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율은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행동을 규제(規制)함을 이른다. 칸트의 윤리관에서 보면 어떤 권위나 욕망에도 구애(拘碍)됨이 없이 실천이성에 의해 스스로 세운 도덕률(道徳律)에 따르는 일을 말한다.
자율은 타율(他律)과 대조되는 말이다. 자율은 스스로 하는 것이나 타율은 그게 아니다. 타율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他人)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은 자발적(自発的)으로 한다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 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 하기 때문에 거부반응(拒否反応)이 없다. 대충대충 하지도 않는다. 생략하지도 않는다. 꾀를 부리지도 않는다. 타율일 때는 그렇지 않다.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남의 눈치를 보고 괴를 부리기도 한다. 회피(回避)하고 도망가기도 한다. 아니 모른 척하기도 한다.
봉쇄는 타율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타력(他力)에 의한 것이다. 아니 공권력(公権力)에 의한 것이다. 공권력이 다스리는 것이다. 물론 봉쇄는 공(公)을 위해 취해지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될 때 취해지는 것이다. 국가 안위(安危)와 사회 안녕(安寧)이 해를 입을 때 취해지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역병(疫病)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교통을 차단하고 사람의 이동(移動)을 금지한다든가 태풍과 같은 자연재난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왕래(往来)를 금지하는 모든 조치들이 모두 봉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한 마디로 구속(拘束)당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자율과 봉쇄를 말하는가. 때로는 봉쇄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양면성(兩面性)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봉쇄와 자율의 결과를 가장 극명하게 대비시켜주는 나라가 연방국가 미국이다. 외교와 국방을 빼고 높은 수준의 자치가 이뤄지는 미국 50개 주(州)는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당이 운영하고 있느냐에 따라 방역과 경제의 성적표가 크게 엇갈린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 지배하의 주들은 강력한 봉쇄조치 여파로 경제상황이 심각하다. 뉴욕(12.5%) 캘리포니아(11.4%) 펜실베이니아(10.3%) 등 상당수 불루스테이트의 8월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의 주들은 다르다. 최대한 경제활동을 보장한 덕분에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텍사스(6.8%) 조지아(5.6%) 유타(4.1%)의 8월 실업률은 불루스테이트들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봉쇄와 자율의 장단점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겸허히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편벽되게 한쪽만 믿으면 아둔해진다(兼聴則明 偏信則暗).”고 했다. 되돌아보고 성찰(省察)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