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희 칼럼] 애국심과 처세와 원칙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 입력 : 2020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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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칙과 소중한 가치를 지키며 처세에 능한 지도자는 없는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 시대고 처세를 잘 해서 권세를 오랫동안 누리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숙손통((叔孫通)이라는 인물은 처세에 크게 능한 인물이다. 진시황에게 발탁되어 버슬을 살고 2세 황제 호해, 항량,초희왕, 항우, 한고조 유방, 혜제에 이르기까지 무려 10 여명의 주군에게 몸을 맏겨 높은 벼슬을 하며 호의호식 부귀영화를 누렸다.
적대관계의 유방과 항우 두 사람 모두에게 쓰임받는 처세술은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모르겠다.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이 벌어지자 다른 박사 유학자들은 "모반이니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진(秦)2세 황제가 반란이란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저 소란일 뿐"이라고 입에 맞는 말을 해 처벌을 피했다.
항우를 버리고 유방에게 귀순했을 때는 유생을 싫어하는 유방의 비위를 맞추려 유생 옷을 버리고 유방의 고향에서 입는 짧은 적삼으로 바꿔 입기도했다.
그가 아첨 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의례를 제정하고 종묘와 원묘를 건립한 유학의 거장이기도 했다.
유방이 태자를 폐하려 했을 때는 "그러시려면 나를 죽인 뒤에 하십시요"라고 소신 있게 반대하기도 했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며, 길은 원래 꾸불꾸불 한 것"이란 말은 숙손통을 두고 하는 말" 이라고 찬양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그가 분서갱유를 한 진시황에겐 침묵으로, 2세 황제에겐 거짓말로, 유방에겐 떠받들기로 모습을 바꿔가며 권력의 파도타기를 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풍도(馮道) 라는 인물은 당 멸망 뒤 후당. 후진 등 다섯 왕조에 걸쳐 열한 명의 천자를 섬기며 고위관리로 30년, 재상으로 만 23년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풍도는 자신의 사후 들어선 송나라 때 " 지조 없는 파렴치한"이라는 흑평을 받기도 했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로 충성이 강조되던 송대 역사관의 반영일 것이다.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쿠테타가 10년이 멀다하고 이어졌던 그시절 여러 왕조에 거듭 기용된 풍도의 실력과 처세는 남다른 데가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실무를 중시하는게 그의 처세 원칙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일제 때는 친일을, 자유당 때는 이승만을 섬겨서, 공화당의 유신독재, 민정당의 군사독재와, 민자당 등의 여당에 등용돼 부귀를 누리는 그들도 보수라 하니 젊은이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백성을 굶겨 죽이는 북한의 3대 세습독재 정권이 좋다하는 종북세력도 진보라 하니 장년과 노인층은 이해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진짜 보수와 가짜 보수, 진짜 진보와 가짜 진보,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정리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벌써부터 유력한 대권을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집에는 많은 정치인 공직자들의 발걸음이 넘친다고 한다.
적어도 우리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굳건한 의지와 세계 질서의 흐름을 읽어내고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며 이끌어내야 할 투철한 애국심과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의 첨예한 대립과 북한의 핵 앞에서도 싸움질만하는 이 나라의 정치권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걱정이 태산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니고 원칙과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처세에 능한 정치인은 없는가?
이중희 / 포천문화원 부원장, 포천신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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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  입력 : 2020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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