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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 먼저 선 / 근심할 우/ 뒤 후/ 즐거울 락
- 세상 근심은 남보다 먼저하고 즐거움은 남보다 나중에 함
출전-범중엄 악양루기(岳陽樓記)-중국 북송(北 宋 ) 때의 정치가·학자 범중엄(范仲淹)이 지은 악양루 정자에 대하여 지은 시의 일부)
범중엄(范仲淹 서기 989-1052년)은 중국 북송(北 宋 ) 때의 정치가·교육가·학자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재상까지 된 훌륭한 인물이였는데, 그는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을 건지는 것이 어릴 때부터의 소원이였다. 그가 어느 사당(祠堂) 앞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뜻대로 된다고 하는지라, 그는 사당에서 이렇게 빌었다. 「저는 훌륭한 재상이 되기를 원치 않고 훌륭한 의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병든 사람을 구해주는 것이 더욱 어렵고 훌륭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가 어려서 한때 혼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참외 장수가 참외를 한 짐을 지고 장으로 팔러 가는 것이 보였다. 배도 고프고 날씨도 더운 판에 참외 하나만 먹었으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사 먹을 돈이 없는 그는 속으로 하나만 굴러떨어졌으면 하고 바랐다. 귀신이 감동했는지 참외 장수가 몸을 추스르자 참외 하나가 지게에서 굴러 길 아래로 떨어졌다. 참외 장수는 지게를 받쳐 놓고 참외를 가지러 내려갈까 망설이더니, 귀찮은 듯이 그대로 가버렸다. 물론 범중엄은 반갑게 찾아서 먹었다. 그 뒤 재상이 된 범중엄은 그때 생각을 잊을 수 없어 참외가 떨어졌던 곳에 큰 과정(瓜亭-참외막. 원두막)을 짓고 많은 참외를 심어 지나가는 돈 없는 나그네에게 그냥 주게 했다.
지방관과 내직의 재상의 직위를 번갈아 하여도 불평하거나 모함한 관리를 원망하거나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백성을 위하는 정치만 하였다. 중국의 4대 정자의 하나인 악양루가 중수(重修)되자 헌시(獻詩)를 지은 것이 『先天下之憂而憂(선천하지후이우)하고 천하의 근심은 앞서 걱정하고, 後天下之樂而樂歟(후천하지락이낙여)하라. 천하의 기쁨은 나중에 기뻐한다.』줄여서 선우후락(先憂後樂) 이라는 명시를 남기어 중국 공직자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후 공자 다음의 성인이라는 주자(朱子 1130-1200)가 편찬한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에는 그가 좋아하는 글귀라고만 하였지 작가를 밝히지 않았다.
범중엄은 이시의 끝부분에 「슬프다. 내가 일찍이 옛날 어진 사람의 마음을 찾아보건대, 부처와 노자(老子)가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물건으로 기뻐하지 않고 자기 일로써 슬퍼하지 않는다. 조정에 있어서는 백성을 걱정하고, 강호에 있어서는 임금을 걱정한다. 이것은 나아가도 걱정이요, 물러나도 걱정이다. 그러면 어느 때 즐거워하는가. 그것은 필시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낙을 뒤에 즐겨야 한다.」라고 부재상(參知政事) 때인 1046년에 지은 시이다.
관료는 어디에 있든 늘 국가와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엄중한 선언을 담고 있다. 백성이 근심하기 전에 먼저 문제점을 발견해서 백성의 걱정을 덜고, 모든 백성이 다 안락하게 생활을 향유할 때 비로서 즐거워 해야 하는 태도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정치인의 자세라고 할 것이다.
참고하거나 이용한 자료 – 범중엄(范仲淹) 시 [선우후락(先憂後樂)] [이야기 고사성어 장기근 박사 감수 선우후락(先憂後樂) ]
최창근 / 국사편찬위원회 국내사 자료 조사위원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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