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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신문 |
| 예부터 포천의 삼다(三多)는 양반 많고 말 많고 돌이 많음이라 하였다.
양반이 많으니 따지기 좋아하고 말이 많음은 사실이고 농지 마다 돌이 많아 밭이나 논두렁에는 돌무덤이 많았다.
돌이 많아서 늦게 까지 석재가 많이 생산되어 건축자재로 그 명성을 떨쳤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돌 하면 포천이다. 그래서 필자는 포천사람을 춘전 경우(春田 耕牛)라고 소개한 일이 있다. 옛날은 가난하고 못살았다지만 지금은 봄 일찍 소 같이 부지런히 밭을 갈아 잘 살게 된 고장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포천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
1. 노는 사람 없는 마을 2. 거지(居地->노숙자) 없는 마을 3. 글 모르는 사람 없는 마을
6.25전쟁이 끝나고 제대한 예비역 장병들이 다른 고장에서는 재향군인회를 만들어 일도 안하고 직장도 없이 찬조금품을 받고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내 고향 포천은 제대 장병들이 모두 일 잘하는 고장이 바로 포천이었다.
또, 다른 고장은 노숙자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런데 우리 고장은 거지 마을이 없다. 미장공으로 유명하던 조씨가 양색시에게 속아서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미쳐서 다리 밑에서 다른 여자 노숙자와 거지노릇을 하며 살더니 고향을 욕되게 하는 놈이라고 장사에게 매를 맞고 자리를 떴다는 소문이 있었다.
또, 6.25이후 군정에 성인교육계가 신설되어 ‘한글교실’을 국민학교에 신설하고 김병하 선생님이 ‘촉성반’을 만들어 나이많은 어린이들을 국민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졸업시켰다.
그러고 보니 어찌 한글미해득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국민학교졸업생들이 사환(급사, 고용원)에서 출발하여 군수, 부군수나 과장, 국장으로 퇴직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만큼 국민학교 선생님들이 열심히 잘 가르쳐 고장의 일군을 길렀다는 얘기가된다. 그렇다면 포천의 자랑은 무엇일가? 찾아보기로 하자.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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