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populism)이란 대중영합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대중[Mass]을 의식하는 것이다. 대중을 위한다는 명목(名目)으로 그들에게 어필(appeal)하는 것이다. 대중에 간청(懇請)하고 대중에 호소(呼訴)하는 것이다. 아니 아첨(阿諂)하는 것이다. 페론이즘(Peronism)은 또 뭔가? 페론이즘은 포퓰리즘과 상통(相通)하는 말이다. 포퓰리즘의 다른 이름이 페론이즘이란 말이다. 페론은 사람 이름이다.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이름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퍼주기만 한 사람이다. 나라는 어찌되건 말건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데만 올인한 사람이다. 그로 인해 나라는 거덜 나고 국민은 도탄(塗炭)에 빠지고 말았다.
바야흐로 전문가가 절실(切實)한 시점이다. 전문가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고려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의 만족을 위해 한 가지 인과관계(因果關係)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다양(多樣)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선택(選擇)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포퓰리스트는 그게 아니다. 그들은 외골수로 한 가지만 고집한다. 한 가지 인과관계에만 집착(執着)한다. 매달린다.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만 생각한다. 아니 개인의 영달(榮達)과 권세만 생각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수많은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해야 단단하게 나라의 기반(基盤)을 다질 수 있다. 문제는 먹거리다. 일자리다.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명령을 하고 무한으로 세금을 투입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 시장의 수요와 공급, 생산력과 경쟁력, 기술, 혁신, 통화정책 같은 모든 것을 고려할 수 있는 최고의 거시경제적 지식과 실질적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구(窮究)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해야 한다. 나라를 생각하고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위정자(爲政者)라면 그리 해야 한다. 불란서 대통령 마크롱을 보라. 독일의 콜이나 브란트 수상을 보라. 그들은 어떠했는가? 개인의 영달(榮達)과 부귀영화를 떨쳐버리고 구국(救國)의 결단을 내렸다.
마크롱은 집권 초 노동 개혁을 단행하고 유류세를 올렸다가 노란 조끼 역풍을 맞아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3개월에 걸친 국민대토론회로 위기를 돌파했다. "새 프랑스 건설을 위해 도전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도전해서 성공한 국민이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면서 부유세 부활 요구도 끝내 거부했다. 그의 개혁은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실업률이 1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고, 경제성장률은 독일의 2배를 웃돌고 있다. 국제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과 협의 없이 이란 핵 합의를 깨고 시리아에서 철수하자 독자적 유럽연합군 창설을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페론은 “아무리 퍼주어도 결코 경제가 망하지 않는다”는 가짜 신화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호언은 이미 ‘20세기 최대의 거짓 약속’으로 판명 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멸종을 거부하는 좀비처럼 영향력은 더 세졌다. 중남미 대부분 지도자가 그를 추종했다. 21세기 들어선 더 많은 세계 지도자가 그를 배우고 흉내 낸다. 그의 이름을 딴 페론이즘은 정치·경제학의 중요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反)페론이즘, 신(新)페론이즘까지 등장했다. 페론이즘의 대표적 특징은 성장과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되 그 부작용인 인플레이션, 재정 적자, 대외 압박은 같은 것은 외면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마약과 같은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강도(强度)는 더 세진다. 한 번 돈맛을 본 유권자는 더 많은 돈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페론 대통령은 1952년 “내게 표를 몰아주면 연금을 더 많이 늘려주겠다”고 공약해 아르헨티나 대선 사상 최대 득표율을 기록했다. 기시감(旣視感)이 들지 않는가. 남의 일이 아니다. 국민이 뿌리치지 않으면 포퓰리즘이란 마약은 나라 곳간을 거덜 내고 아이들의 미래를 망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