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가운데 발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말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언’이란 말이다. 뜻글을 보면 진언이란 말에는 眞言 眞諺 陳言 그리고 嗔言과 進言이란 것이 있다. 眞言이란 부처의 깨달음이나 서원(誓願)을 나타내는 말이고 眞諺이란 진서(眞書)와 언문(諺文)을 말하는 것이며 陳言이란 진부한 말이나 케케묵은 말을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또 嗔言은 성내어 꾸짖는 말이고 進言은 윗사람에게 자신의 의견(意見)을 들어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두(話頭)로 내세운 진언과 직언(直言)은 또 무엇이 다른가?
직언(直言)은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곧이곧대로 하는 말이다. 直言에서 直은 갑골문을 살펴보면 ‘눈’의 뜻인 目(목)과 수직의 ‘막대’를 뜻하는 丨(곤)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수직의 막대는 ‘측량 막대’이다. 본래 ‘똑바로 보다’의 뜻이며 ‘걷다’ ‘바르다’의 뜻은 파생되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바로 보다[正見也]’라 하였다. 직감(直感)은 ‘곧바로 느끼다’이며 직보(直報)는 ‘제삼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보고하다’의 뜻이다. 이에서 보듯이 直은 ‘똑바로 본다’는 것이다. 왜곡(歪曲)되지 않고 ‘바르다’는 것이다. 꾸미지 않는다는 것이고 조작(造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언(進言)은 그뿐이 아니다. 진언에서 進은 ‘가다’의 뜻이 辶(착)과 ‘새’의 뜻인 隹(추)로 이루어진 글자로 ‘나아가다’의 뜻을 나타낸다. ‘다가가다’, ‘오르다’의 뜻은 파생되었다. 설문해자에서는 ‘오르다[登也]’라 하였다. 진보(進步)는 ‘사물의 내용이나 정도가 차츰차츰 나아지거나 나아가다’의 뜻이며 進路는 ‘앞으로 나아갈 길’의 뜻이다. 진언은 이처럼 앞으로 나아가 바른 말을 하되 사려(思慮)깊은 말을 하는 것이고 대의(大義)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사사로이 이익을 탐(貪)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충(忠)을 뛰어넘는 것이다. 충을 뛰어넘어 양신(良臣)의 길을 가는 것이다. 대간(臺諫)의 길을 가는 것이다.
사극 작가 신봉승씨가 여러해 전에 조선 임금 27명과 신하 600여명 가운데 적임자(適任者)를 골라 '드림 내각'을 짜본 적이 있다.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 되다'라는 책에서다. 대통령 세종 밑에 기획재정부 장관 이황, 지식경제부 장관 정약용, 행정안전부 장관 이이(李珥), 등등 이런 식이다. 그런데 국무총리는 조선 중엽 '오리 정승' 이원익(李元翼)이었다. 이원익은 여든일곱까지 살며 70년을 공직에 있었다.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領議政)을 다섯 번이나 했다. 그러면서도 노년에 재산이라곤 초가(草家) 한 채였다. 어느 날 인조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정치를 펼 수 있는가" 라고 물었다.
이원익이 대답했다. "성상(聖上)께서는 자신의 견해만 믿고 신하들을 경시하고 독단으로 처리하시는 일이 많아 군신(君臣) 간에 서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잘 다스리고자 한들 되겠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바른 소리로 진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와·선비가 많았다. 어사 박문수는 탕평책(蕩平策)의 성과를 묻는 영조에게 대꾸했다. "홍문관 관원 자리 하나도 끝내 지역의 벽을 넘지 못하니 근래 탕평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 탕평입니다." 영의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다. 권세와 영화가 큰 자리일수록 임금에게 듣기 싫은 소리 하는 게 더 어렵고 그래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직언이든 진언이든 듣는 쪽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당나라 현종 집권 초기를 중국사의 황금기라고들 한다. 유능하고 강직한 재상들이 황제의 잘못을 용서 없이 질타(叱咤)하고 거기에 황제가 귀를 기울였기에 가능했다. 한휴(韓休)도 그런 재상이었다. 한휴가 물러간 뒤 현종이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곁에 있던 사람이 "한휴가 재상 된 뒤 폐하가 더 야위셨습니다" 현종은 "정말 그렇다"고 했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내가 야윈 만큼 백성은 살쪘을 것이다.”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