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오른쪽 다리가 절단된 후, 나무로 만든 의족을 맞추어 두고 아파트를 나갈 때는 의족을 신었다. 그녀의 아파트에는 의족을 벗어 놓고 아픈 무릎을 올려놓는 의자를 가까이 두고, 필요할 때 그 의자를 바닥에 굴리며 여기저기를 다녔다. 할머니는 내 아버지의 어머니였고, 훌륭한 예절과 제대로 된 의복을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정에서 자랐다. 일찍이 이런 가치를 거부하고 음악과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을 때, 할머니는 유행이 지난 옷을 입어야 책을 살 여유가 생겼다. 할머니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책을 가장 많이 가졌다—가죽 양장본의 시집, 두꺼운 철학 서적, 유명한 그림이 인쇄된 커다란 책, 할머니가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해부터 쌓아둔 누렇게 바랜 신문더미 등.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젊었을 때 아버지처럼 붉은색이었지만 이제 하얗게 세고 그 위에 리본을 둘렀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할머니가 주방에서 거실까지 불편하게 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의자 다리가 더 짧으면 어머니가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의자 다리를 2cm 짧게 톱질해서 자르고 초록 펠트의 주름으로 의자 다리를 감싸고, 전기용 테이프로 의자 다리를 단단히 고정하였다. 이렇게 하자 할머니가 바닥을 미끄러져 나가기 더 쉽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장판에 쉽게 긁히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는 거의 소리 없이 나타났고 의자 다리 소리로 그녀의 도착을 알리는 것에 익숙해 있던 우리를 놀라게 했다. 부모님이 이사 와서 같이 살자고 여러 번 재촉했음에도 할머니는 뒤셀도르프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기를 고집했다. 나는 토요일 오후가 되면 할머니를 방문했고 우리는 여러 방들에 넘쳐나는, 너무나 강렬한 느낌이 내 안에서 일어나서 그 느낌을 무엇으로 이름 부를 수 없었던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했던 것 중에서 최고의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슬퍼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할머니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른쪽 다리가 절단된 지 2년이 지난 후에 할머니는 멀쩡한 왼쪽 다리의 무릎 아래가 따끔따끔 아프고, 통증이 점점 커지고 타는 듯 아파서 밤마다 잠을 못 이루었다. 통증은 발가락까지 퍼졌다. 할머니의 발은 온통 갈라지고 물집이 생겼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으면, 이번엔 마비가 와서 다리가 차갑고 허옇게 되었다. 할머니의 오른쪽 다리는 치료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마비가 왔다. 이번에 왼쪽 다리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아들부부에게 성 루카스 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할머니를 담당한 의사는 항생제를 처방하고 할머니를 호프가르텐의 경치가 내려다보이는 2층에 있는 좁고 흰 방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할머니는 너무나 아파서 창밖을 보거나 백조와 오리들이 있는 연못을 지켜보거나 공원을 따라 이어진 오솔길에 줄지어 선 나무를 따라 자전거 타는 아이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느 아침엔가 어머니가 할머니를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5장의 담요를 덮고 누워있었다. 그러나 몸은 추위로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치과 치료를 하고 나서 늦은 오후에 도착해 할머니의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10월의 비 오던 어느 날, 아버지는 하루 일과를 일찍 마치고 할머니와 함께 보내려고 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한쪽 손을 할머니의 창백한 얼굴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흰 머리는 숱이 너무 많이 없어져 머리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겹겹이 쌓인 담요 위에서 파르르 떨렸다. 평생 동안 아버지가 보아온 어머니는 강인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가 맹장 파열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할머니는 아버지와 고모를 혼자 키워냈다. 아버지는 눈을 반짝이며 상체를 구부려 할머니의 메마른 볼에 입술을 댔다. 할머니는 마치 자신의 나약함이 부끄러운 듯 아들에게서 시선을 멀리했다.
창밖으로 나무들이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휑하니 서 있었다. 1941년 바로 그 목요일에도 날씨가 그랬다. 거의 17년 전에 할머니의 학생들 중 한 명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가 철학 수업을 하던 중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두 번이나 경고를 받았으나 제3제국, 즉 나치독일의 견해에 그녀의 강의를 적용하기를 거부했다. 4달 후에, 그녀는 사상이 반역적이라고 당국에 의해 평가된 다른 독일의 지식인들과 함께 수감되었던 교도소에서 돌아왔지만, 대학 강단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아버지가 할머니의 병실을 나갔고, 주치의가 복도에서 그를 향해 걸어왔다. 눈 주위의 피부는 주름이 없이 팽팽했지만 그의 얼굴은 턱 위로 굵고 깊은 주름이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