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에 붙어 있던 글귀이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저 온고지신(溫故知新) 만으로 약해서 쓰는 게 보통이다. 얼마 전까지도 필자네 거실에 걸려 있던 글귀로 방학동 사는 동천(東泉) 서예가가 써준 글이기도 하다.
애들이 다 커서 중노가 되어 구자회복지문으로 바꿔 걸었다가 그마져도 떼어버렸다. 말 많기로 둘째가라면 슬퍼할 필자를 스스로 경계한 말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자.
온(溫)자를 공자님이 쓰신 것은 단순한 습(習)에 그치지 않고 재창조의 의미를 숨겨놓은 것이다. 배우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를 실천하고 창조해야 배운 뜻과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우리 옛 속담에 됫글(작은됫박)로 말글을 써먹는다는 말이 있다. 배운 것은 별로 없어도 지식인 이상으로 큰 뜻을 펴고 창조적 삶을 사는 사람이 있지 않겠는가?
공자님은 신지식인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내 고향 포천에도 버려진 농토를 사서 새로운 소득 작물을 심어 연간 수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농민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원에는 조선조 명인의 후손을 자처하는 자칭 대가로 있고 지식인이네 하는 연구원 자문위원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 생활 속에서 옛것만 내세우는 구지식인이 많다. 또, 돈과 명예를 독점하고 그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유아독존의 구지식이 마치 큰 지식인양 떠들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저녁이면 사랑방에서 글 읽는 소리 들리고 멀리 장에 가신 서방님 맞아 드리는 개 짖는 소리 들리고 노부모님 주무시는 방에 따뜻이 불 지펴 드리고 네 계절 뒷산선형에 모신 조상님 묘소에 봉제사하고 때때로 벗님네(朋友) 반갑게 맞아 제철음식 대접하니 접빈객의 예를 다 함이요 형제간에 우애하고 이웃 간에 서로도우니 상부상조의 예를 다하는 바라 배운 대로 행하고 있는 내 고향 바라, 배운 대로 행하고 있는 내 고향 농민들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니 고맙고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