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3일자 미국 CNN방송 인터넷에 “좋은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Where are the good jobs?” / Opinion, Rick MeGahey)”라는 주제의 칼럼이 실렸다. 2015년 8월 2일자 미국 뉴욕 타임즈에는 “더 많이 배웠는데, 소득이 적은 이유(Earning much less, Despite more education / NYtimes.com)”라는 글이 실렸다. 두 글의 주요내용은 공통적으로, 천 년을 맞이한 세대들(Millennials)이 공부를 더 많이 했음에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고 소득이 줄어들고 있으며, 빚에 허덕이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가까운 시일 안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1) 장기적인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자 증가 및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의 증가, 2) 학자금 대출과 경기부진으로 인한 소득 감소에 따른 저축 불가능, 3) 일자리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 4) 낮은 임금의 일자리 증가, 5) 경영자와 근로자 간의 임금 격차 증가 등이다.
4가지 원인을 꼽으면서, 아무리 교육을 강화해도 가난해지는 현상(“Better Educated, But Poorer”.)을 안타깝게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적인 정책 변화 없이는 냉혹한 미래(bleak future)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최근 7~8년간 최저의 실업률을 보이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미국에서 좋은 일자리가 줄어 드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몇 년째 경제 성장률을 낮추고 허우적거리는 우리나라의 형편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 더욱 힘들고 괴로운 시련이 닥칠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 예상된다.
청년실업의 증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해서 오는 경제적 고통과 더불어, 보다 더 큰, 잠재적 위험(Potential Risk) 을 갖고 있다. 한창 일하고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젊은이들이 사회활동에서 외면당하고,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인해서 발생하는 개개인의 정신적 황폐와 상처는 물론, 전반적인 사회적 기능 저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기업 또는 금융권의 최고 경영자(CEO)들에게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보수를 지급하면서 협력업체에 대한 거래는 마른 수건 쥐어 짜듯이 괴롭히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정서적 의욕상실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존립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고, 국민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할 수도 있다. 기업과 조직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모르지만, 은행장들이나 대기업 임원들이 직원들의 평균보수보다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의 연봉을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일하지 않는 의원들이 수백 명씩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간단히 측정될 수 없고 쉽게 나타나지 않는(unmeasurable and invisible) 중대한 위기를 가져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어느 자동차 회사가 해외로 이전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회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기술과 고용을 창출하는 생산공장은, 기업경영의 생산성과 경영자의 이익을 이유로 알게 모르게 해외로 모두 빠져 나가고, 소비와 서비스 산업만 번창하고 있는 가운데, 점원과 배달원 등(Cashers and Food Services, etc.)의 일자리만 늘어나서는 절대로 좋은 일자리는 만들어질 수 없다. 정부예산을 투입하여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노사분쟁이 심해지고, 기득권자의 이익만 주장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힘은 노동시장의 통제에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정치권의 태만을 바로 잡지 못하고, 부정부패가 줄어들지 않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면 한국은 영원히 3류국가로 남을 것이며, 일본과 중국, 러시아와 미국 등 강대국들의 패권싸움에서 생존의 위협마저 피할 수 없는 처참한 미래가 예상된다.
특히, 300명이 넘는 국회의원과 수십만 명의 공직자들이 200조원이 넘는 갈등비용의 씨앗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시간은 한국의 편이 아니다.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는 한국의 성장의 꽃을 피우다 말고 져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 국민이 하나되어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