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장자(莊子-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는 중국 전국 시대 송(宋)나라 몽(蒙;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하남성 상구 추정) 출신의 저명한 중국 철학자로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본명은 주(周)이다.)
장자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어느 날 장자는 자기가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잠을 깨니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장자는 이처럼 상식적인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고 유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가르침 따위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연으로 돌아갈 것과 무(無)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노자가 정치와 사회의 현실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데 대해, 장자는 개인의 안심입명에만 몰두했다. 노자(老子)가 혼란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무위자연에 처할 것을 가르쳤던 반면, 장자는 속세를 초탈하여 유유자적하고자 했다. 즉 노자는 어느 정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 반면 장자는 오직 개인에 대한 것을 강조하였다.
애는 썼으나 애를 쓴 보람이 없음, 수고만 하고 아무런 공이 없음을 표현 할 때 쓰는 쉬운 말로,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서쪽에 있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수제자 안연(顔淵)이 사금(師金)이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의 이번 여행길은 어떻겠습니까?"
사금은 이랬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신 선생은 아마 이번에 욕을 보실 겁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다그쳐 묻는 안연에게 사금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선생은 전에도 여러 나라에서 곤욕을 치렀지요. 송(宋)나라에서는 나무 그늘 밑에서 강론을 하다가 베어진 나무에 깔릴 뻔했고 위나라에서는 쫓겨나기도 했으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의 들에서는 이레 동안이나 끼니를 굶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사금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길을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고, 육지를 가기 위해서는 수레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물길을 가야 할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가려고 한다면 한평생이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과 이제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다름이 없고 주(周)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는 배와 수레의 차이가 아닙니까. 이제 주나라의 옛날 도(道)를 오늘의 노나라에서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배를 육지에서 미는 것과 같아서 '애는 쓰나 공은 없고(勞而無功)' 또 그 몸에도 반드시 화가 미칠 것입니다.
당신 선생은 아직도 저 무한한 변전(變轉), 곧 끝없이 변동하는 도(道)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당신 선생은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
莊子(장자) 天運篇(천운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또 管子(관자) 形勢篇(형세편)에 「옳지 못한 것에 편들지 말라. 능하지 못한 것을 강제하지 말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지 말라. 이 같은 것을 가리켜 수고롭기만 하고 공이 없다고 말한다.」라고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