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奸)은 의미요소로 女(여)와 발음요소인 刊(간)이 더해진 글자로 ‘범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또한 ‘남녀 간의 도덕을 범하다’의 뜻으로 쓰여 ‘사특하다’, ‘부정하다’의 뜻도 나타낸다. ‘간사하다’의 뜻인 姦(간)과 통용된다. 간사하다는 것은 성질이 능갈치고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뜻이다.
능갈치다는 것은 능청스럽게 잘 들러대는 재주가 있다는 뜻이고 능청은 마음속은 엉큼하면서 겉으로 천연스럽게 꾸미는 태도를 말한다. 신(臣)은 부릅뜬 눈의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본래 ‘똑똑한 신하’의 뜻이다. 간신은 ‘간사한 신하’로 임금이나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지 않고 개인이나 가문의 영달만을 위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신하를 말한다.
봉영(奉迎)은 귀인이나 웃어른을 받들어 맞이함을 말하는 것이고 상의(上意)는 임금의 뜻이나 윗사람의 뜻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봉영상의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래로 임금이나 윗사람을 어떻게 보좌(保佐)하느냐에 따라 충신(忠臣)도 되고 간신(奸臣)도 되는 것이다. 흔히 중국 남북조 시대 남조(南朝)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종종 당나라 현종(玄宗)과 비교되곤 한다. 대체로 전반기는 치세(治世)를 이루다 후반기에는 난세(亂世)를 빚어냈는데 난세를 만들 때 현종에게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다면 무제에게는 주이(誅夷)라는 간신이 있었다.
무릇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주군(主君)이라 하더라도 의견이 분분할 때는 역사를 되돌아봐야 한다. 역사를 거울삼아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적국인 동위(東魏)에 신하들 간 권력다툼이 심했다. 이때 후경(侯景)이라는 인물이 권력자 고징(高澄)과 대결에서 밀려나자 반란을 일으켜 13개 주(州)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양나라에 귀순을 청했다.
양나라 신하들은 모두 “장차 내분의 싹이 될 수 있다”며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주이는 무제의 속뜻이 나라를 넓히는데 있다고 보고 “동위 땅의 절반을 갖고 온다는데 왜 거절해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무제는 후경을 받아들였고 불행의 씨앗은 잉태 되었다.
얼마 있다 이번에는 동위의 고징이 우호를 맺자는 글을 보내왔다. 이에 사농경(司農卿) 부기(傅歧)가 반대했다. “고징이 필시 이간책을 쓰는 것입니다. 이 일로 후경이 불안해한다면 반드시 환란을 도모할 것입니다.” 무제가 전쟁을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자 주이가 화친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오래지 않아 후경이 주이와 그 일당을 주살할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고 이듬해 무제는 유폐됐다가 곧 사망했다. 혼란에 빠진 양나라는 10년 만에 진(陳)나라에 멸망당했다. 주이는 30년 가까이 권력을 누리는 자리에 있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런 부귀를 지키려 오직 임금 뜻에 맞추려고만 하고[奉迎上意] 나라를 위한 계책을 내려고 하지 않았다.
한나라의 대 유학자 유향(劉向)은 간신의 유형을 이렇게 분류했다. “첫째 관직에 편안히 있으면서 녹봉이나 탐하고 관망하는 구신(具臣). 둘째 군주가 하는 말은 모두 좋고 옳다면서 후에 닥치게 될 위험은 돌아보지 않는 유신(諛臣). 셋째 속마음은 음흉하면서 겉으로는 삼가는 척하며 상벌을 부당하게 내리도록 하는 간신(奸臣). 넷째 지략은 자신의 잘못을 꾸미기에 충분하고 말솜씨는 누구든 설득시키기에 충분해 안으로 이간하고 밖으로 난을 빚어내는 참신(讒臣). 다섯째 권세를 제멋대로 해 경중을 바꾸고 붕당을 만들어 파벌을 키우고 멋대로 속여 자신을 높이려는 적신(賊臣). 여섯째 간사한 말재주로 군주를 불의에 빠트리고 눈을 가 려 흑백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망국지신(亡國之臣)이다.
봉영민의(奉迎民意)를 해야 한다. 봉영민의는 충(忠)이지만 백성의 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봉영상의만 해대면 이는 간(奸)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간신을 멀리하고 충신 아니 양신(良臣)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유향이 말한 여러 간신 가운데 하나가 내가 아닌지 뒤돌아볼 일이다. 오늘의 시국을 보면서 어신지술(御臣之術)을 말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