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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설-라인강의 품 안에서(Floating in My Mother`s Palm)] 하얀 라일락(中)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18일
 
ⓒ 포천신문  
“이제 집으로 가도 돼.” 수녀님이 어머니에게 말한다.
“가능하면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어머니는 결혼한 지 4년이 되어서야 임신했다.
—그렇지만 만약에 아기가 잘못되면 어떡해요?—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일어나 옷을 아래로 내렸다. 수녀원의 타일을 깐 복도로 어머니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밖에는 봄바람이 시나몬 바닐라 향기와 함께 엷게 퍼져있다. 길모퉁이엔 한센 제과점 트럭이 주차되어 있고, 바삭바삭한 빵, 반들반들한 롤빵, 페이스트리 등을 진열하느라 트럭 옆 판넬을 열어놓았다.

삼 일을 기다렸으나 어머니의 두려움은 우울함으로 깊어져 갔고 긴장된 마음을 기도로써 누그러뜨려 보려 하였지만 긴장된 마음에 말을 이을 수가 없어 기도를 끝낼 수가 없었다.
“움직여”, 하고 옆에서 아버지가 자는 동안 어머니가 태아에게 속삭였다.
“움직이라고”, 다시 어머니가 혼자일 때 태아에게 소리쳤다.

어머니는 계속 배 주위를 살펴보지만 이제 배는 아래쪽에 거대하고 태동 없이 조용히 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그림에 색을 칠하려 하나, 형상이 어머니가 생각한 것과 달라서 색이 밋밋해 보인다. 어머니는 푸른 겨울 나무 사이로 풀을 뜯는 사슴 그림을 지난 2월에 완성하였고, 그림을 걸어 둘 참나무 액자를 만들고 있다. 사슴들이 풀을 찾아 눈을 밟고 지나간 곳에는 파헤쳐져 드러난 땅 조각이 여기저기 보인다. 사슴의 배는 흰 눈에 반사되어 하얗다.

마침내 어머니는 자궁이 꽉 조여 오고—매 달마다 하는 생리통같이—더 심하지만—뱃속의 태아가 움직인다는 것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느낌은 다르다. 잠시 동안 어머니의 자궁을 넓히는 머리나 다리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으로 향하는, 잘은 모르지만 익숙한 무엇이 엄청나게 뭉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머니가 수녀원 뒤편으로 걸어갈 때가 이른 아침 6시 15분이다. 톨마이스터 부인의 창문은 닫혀 있다. 거리는 텅 비어 있다. 몇 채의 건물은 작년에 끝난 전쟁으로 아직도 잡석더미에 쌓여 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다시 지어졌다. 밤나무 잎이 샛길을 따라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머니는 쉐이버스트라세를 따라 걸으며 개울을 지나간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개울물 위로 높고 넓게 자라던 나뭇가지를 껑충 뛰어 붙잡아 얕은 개울을 그네 타듯 건넜다. 어머니는 모래둔덕을 에워싼 텅 빈 벤치가 있는 놀이터를 지난다. 그네가 미동도 없이 철골에 매달려 있다.

테레지엔하임은 문이 잠겨 있다. 햇빛이 아침의 냉기를 깨고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부딪히며, 핏빛의 붉은색과 하늘의 파란색 깃털처럼 부서져 바람을 일으킨다. 어머니는 조각이 새겨진 문 밖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어머니의 다리는 차갑고 무겁다. 다시 초인종을 울리기 전에 잠시 망설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어느 나이 어린 예비 수녀님이 문을 빠끔히 열고 “수녀님들은 성당 안에 있어요.”라고 말한다.

“아가트 수녀님을 만나러 왔어요. 아기가—”
“1시간 후에 다시 오실래요?”
“—나오려고 해요, 사실은요.”
예비 수녀님은 마치 어머니를 보는 것이 부끄러운 듯이 어머니의 배에서 시선을 피한다.
“수녀님들은 미사가 끝난 후에 아침식사를 해요.”
“아가트 수녀님에게 알려야 해요.” 진통이 점점 빨라지고 온 몸으로 퍼진다.
“저는 성당 밖으로 수녀님들을 불러낼 수 없어요.” 예비 수녀님은 더듬거렸다. “그렇지만 기다리세요.”라며 속삭이듯 말하고 어머니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더 연다.
“저기에서요.” 수녀님은 푸른 옷 주름 위로 예수의 피 흘리는 심장이 드러난 그림 아래에 있는 벤치를 가리킨다.

어머니는 두 손을 모아 거대한 배 위로 포갠다. 마치 이렇게 배를 감싸면 우리 둘 모두를 보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어머니는 딱딱한 벤치에 몸을 낮춰 앉는다. 교회의 닫힌 문을 통해 수녀들의 높은 노랫소리가 새어 나온다. 오르간 주자의 “아베마리아”의 선율 위로 무게도 없이 가벼운, 소리의 강물이 어머니의 마음에 울려 퍼져 어머니는 그 가벼운 선율 안에 둥둥 떠다니고 싶다. 그러나 뒤이어 진통이 밀려온다. 어머니의 몸이 아주 컸음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그래서 어머니가 모르고 지나칠지도 모를 울음보다 훨씬 작은 외침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정연숙 / 옮긴이, 영어강사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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