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식이든 그 의식을 원만히 끌고 갈 수 있는 사회자가 필요하다. 특정 의식의 사회자는 말을 아끼되 정확하고 명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의식이 엄숙하면서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조그만 행사에서도 좋은 사회자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사회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훌륭한 사회자도 말실수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 말실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라는 표현일 것이다. 결혼식장에 가면 결혼식 사회자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사회자가 “다음으로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라고 흔히 말하곤 한다. 물론 학교나 회사의 행사에서도 이와 같은 표현을 자주 듣는다. 교내 행사에서 “다음으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로 말하거나 회사 신년 하례식에서 “그럼, 사장님의 신년 하례 말씀이 계시겠습니다.”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말을 하는 사람을 높이려는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분명 잘못된 것이어서 듣는 사람을 거북하게 만든다. 때에 따라서는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다시 쳐다보게 되고, 속마음으로는 그 사람의 자질까지 의심하게 된다.
‘계시다’는 ‘어른(인격체)의 존재’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지금 집에 계신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를 만약 “아버지는 지금 집에 있으신다.”라고 하면 안 된다. ‘있으시다’는 ‘아버지’와 같은 인격체의 존재를 나타낼 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있으시다’는 ‘관련 사물’과 호응하여 쓰인다. ‘말씀’도 그와 같은 범주+에 들므로 “주례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로 쓰면 잘못이다. 물론, “주례 선생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와 더불어 “주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다음으로 사장님의 축사가 있으시겠습니다.”나 “다음으로 사장님께서 축사를 하시겠습니다.”로 표현하면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사족을 붙여 “다음으로 사장님의 좋은 축사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나 “다음으로 사장님께서 좋은 축사의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다.”등으로 말하면 오히려 듣는 사장이 당황하거나 불쾌할 수 가 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지나치게 아부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자는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되도록 상황에 합당한 말을 선택하여 정확하게 표현하면 된다.
사회를 보는 말 한마디가 자신을 평가하는 자료가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고 잔뜩 주눅이 들어서 떠듬거려서는 안 된다. 당당한 자세로 차분하게 진행을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