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문이 세수 하나 마나’ -재문이는 경포 버스 터미널 목탄차 목탄 불을 피우는 화부터였다. ‘문수천이 술 먹으나 마나’ -문수천 영감은 밤낮 가리지 않고 벌건 얼굴을 하고 다녔다. ‘차태산 씨 마나님 아기 배나 마나’ -음식점을 하는 태산 씨 부인은 부잣집 맏며느리를 닮아 배가 나오고 몸매가 뚱뚱하였다.
또 ‘포천의 여덞다리’를 알아야 했다. 동다리, 솥다리, 게다리, 요물(용우물)다리, 공섬다리, 방아다리, 유성기 다리, 좌우지 다리 등 아름다운 다리 개가 있었는데 영평8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다리였다. 즉 물고기를 잡아다 쉬고 노는 섶다리였다.
또 사연을 몇 개 알아야 한다. 봉래 선생 별세할 때 비(飛)자를 쓴 족자가 날아간 사연, 솔모루 사돈끼리 술 먹고 소를 바꿔 타고 집도 바꿔 귀가한 사연, 호양고개(회암고개) 소도둑놈이 느려터져 발 빠른 순사에게 붙잡힌 사연(솔모루 우시장에서 소판 돈을 회암고개에서 소도적에게 뺏겼는데 뜀박질 잘하는 솔모루 순사가 쫓아가 채포했다), 구읍 성황당 처녀귀신 울음소리로 구두쇠 영감댁 떡 제사 받아먹은 사연, 물어고갯 마루에 금강산 호랑이가 꽃봉수 산제사 먹으러 왔다가 쉬고 간 사연, 고일마을 미치광이 붉은 보자기 펴지면 미친짓 하는 사연, 범데미 호랑이 썩은 물 먹고 전라도 효자가 효자 된 사연, 깊이울 부전에미 호랑이에게 대낮에 뺨 맞은 사연…. 그밖에도 몇 가지 사연이 전설로 전한다.
우리고향 사람들은 5만 밖에 안되는 포천 땅에서 집집마다 수저가 몇 개 있는지도 알고 경이, 달서, 고리, 아리 즉 고성이씨, 아산이씨, 달성서씨, 경주이씨 명문가를 받들고 적자를 면치 못하는 현(군)감을 받고 살았다. 그래서 양반 많고 말 많은 고장의 전통이 부끄럽게 이어왔다. 그러나, 노는 사람 없고, 거지마을 없고, 못 배운 사람 없는 깨끗한 고장이었다. 포천사람을 조춘 경우(早春 耕牛)라고 하는 선비도 있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