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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부사의] 견형(犬形)과 견성(犬聲)

매사 심사숙고(深思熟考) 해야 한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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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한 마리의 개가 형체를 보고 짖으면 백 마리의 개가 소리를 따라 짖는다(言曰 一犬吠形 百犬吠聲 世之疾此 固久矣哉)’는 말이 있다. 후한 말 왕부(王府)의 ‘잠부론(潛夫論)’ 현난(賢難)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왕부는 서출(庶出)이어서 가문에서 천대를 받았고 벼슬길도 막혀 있었다. 하지만 심오(深奧)한 학문과 뛰어난 인품을 갖춘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교우하면서 명저 ‘잠부론’을 남겼다. 그는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많은 개가 따라 짖는다는 속담을 들면서 이는 이미 오래된 병폐(病弊)라고 말한다. 이어 자신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의 실정을 잘 살피지 않는 것이라고 탄식(歎息)한다.

이에 대한 비유로 사원씨(司原氏)의 사냥을 들고 있다. 옛날 사원씨라는 사람이 사냥에 나섰다가 흰 흙을 덮어쓴 돼지를 발견하고 상서(祥瑞)로운 동물로 여겨 비싼 사료로 정성 들여 키웠다. 그런데 나중에 세찬 바람이 불고 큰 비가 내려 흰 흙이 벗겨지자 보통 돼지임이 드러났다. 사물의 실상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는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 같은 세태(世態)가 옛날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왜 그런가. 경거망동(輕擧妄動)하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경솔하고 망령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매사 심사숙고(深思熟考)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말 한 마디와 내가 내린 한 가지 판단이 모이고 모여 결국 나의 정체성(正體性)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일이라면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양지(良知)’를 말하는 이유이고 솔로몬의 지혜(智慧)를 떠올리는 이유이다. ‘양지’는 나중에 미뤄뒀다가 여유가 있을 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바삐 움직이는 매 순간 순간마다 비춰봐야 하는 ‘삶의 틀’이어야 한다. 기본(基本)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중(愚衆)에 휩쓸려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매사 일을 앞두고 연마(硏磨)하고 성찰(省察)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와불가어어해자(井蛙不可語於海者)라 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 밖을 모른다는 말이다. 또 있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살고 있는 철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고[篤於時也] 부분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보편의 도(道)를 말할 수 없는 것은 배운 가르침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束於敎也].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확증편향(確證偏向)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넓게 봐야 한다. 특히 위정자는 그리해야 한다. 호이지악(好而之惡)의 지성(知性)을 말하는 이유이다.

시류에 휩쓸려 ‘추구목옹(芻狗木翁)’의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추구는 제사 때 쓰는 풀로 엮어 만든 개다. 목옹은 나무로 깎아 만든 인형이다. 추구는 진설하기 전에는 상자에 담아 수놓은 비단으로 감싸두었다가 진설을 마치고 나면 길 가던 자가 그 머리와 등을 밟고, 땔감 줍는 자가 가져다가 불을 때기도 한다. 목옹은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며 애지중지하다가 싫증나면 길에다 내던져 버린다.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이학사의 시에 차운하여 보내다’에 추구목옹이 나온다. “옛사람 묵은 자취 추구로 남아 있고 지난날의 뜬 영화는 목옹을 웃는다네(古人陣迹遺芻狗, 往日浮榮木翁).”

서거정(徐居正)도 ‘춘일서회(春日書懷)’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공명이야 필경은 추구와 다름없고 신세는 날아 솟는 종이 연에 부끄럽다(功名畢竟同芻狗, 身世飛騰愧紙鳶).” 여기서는 추구에 지연(紙鳶)을 대구로 썼다. 종이 연은 허공 높이 솟아 활기차게 날다가 줄이 끊어지면 끝 모른 채 날려가 버린다. 이 또한 액막이용이다. 필요할 때는 너밖에 없다며 치켜세우다가 볼일을 다 보고 나면 길에 내던져 일부러 짓밟고 땔감으로 태워버린다. 혹시 가위 눌리거나 동티날까 봐 더 못되게 굴어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바란다.

이규임 / 한국영상제작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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