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희 칼럼] 현 정치권이 본받기를 바라며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 입력 : 2018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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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정치권의 냉철한 현실인식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촉구하면서 이 글를 써본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비록 반정으로 쫓겨났지만 조선 제15대 왕인 광해군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폭군’보다는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해 전란(戰亂)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켜려 한 왕’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이복동생을 죽이고 자신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하는 도덕적인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당시 명나라가 망해가고 후금(후에 청나라)이 승승장구하며 중국 대륙의 지배권을 장악해 가는 국제정세를 정확히 간파하고 실리적인 중립외교 정책을 시행했다.
명나라의 파병 요청에 군대를 파병했지만 후금과의 전투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전세(戰勢)가 불리해지면 즉시 항복하도록 5도도원수(五道都元帥) 강홍립에게 밀명(密命)을 내렸다.
강홍립 역시 이런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충실히 따랐다. 강홍립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후금에 바로 항복하고 후금에 억류돼 있으면서 후금의 상황을 광해군에게 자세히 계속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바탕으로 광해군은 조선이 후금과 적대 관계를 맺지 않게 하면서 명나라의 계속된 파병 요청을 적절히 거부했다.
이런 광해군의 뛰어난 중립외교 정책과 강홍립의 활약으로 광해군 재위 기간 동안엔 조선은 후금의 적국(敵國)이 되지 않고도 전란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623년 이귀, 김유 등 서인 일파가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폐위되었고 무능한 인조가 왕위에 올랐다.
서인 일파가 내세운 반정의 명분은 광해군이 이복동생을 죽이고 계모를 폐하는 등의 폐륜(廢倫)을 저지르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조선을 구한 명나라를 버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간신의 무기인 시기, 모함, 견제에만 능했던 무능한 서인 일파는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고 오직 권력만 탐했을 뿐이었다.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면 이를 막아내고 나라를 지킬 대책과 이를 시행할 능력과 의지는 더더욱 없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당시 광해군과 서인 일파 사이에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대화가 이뤄져 서인 일파가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조선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를 알았다면 인조반정도, 정묘호란도, 병자호란도, 삼전도의 굴욕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미국과 중국사이에 낀 한반도 우리민족의 운명이 명나라와 후금사이에 끼었던 조선의 상황이 무서우리 많큼 비숫한 입장이라고 생각될 때 광해군의 중립 외교가 더 없이 생각되는 것은 왜 일까.
남ㆍ북 정상회담 등으로 남ㆍ북 관계가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북한 핵 폐기와 종전선언 등의 난제(難題) 해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민족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직시하고 정부와 여ㆍ야 정치권은 현실을 냉철히 주시 하면서 국가와 민족,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애국심만으로 허심탄회한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  입력 : 2018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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