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짓말쟁이로 취급할 것이냐 네 놈들에게 명령한다 나를 태워라 -브레히트 그 해 가을 나를 찾는 이가 많아졌다는 건 희극이다 나는 이제 막 성삼재를 지나 노고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숨고르기를 할 참이었다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하였다 단풍은 제 철인 양 무지개 빛으로 바람에 일렁거렸다 몇 번의 쉼으로 천왕봉 모습이 보였다 계절을 알려주는 눈부신 하늘은내가 너무 도시 생활만 한 게 후회스러워졌다 이 얼마만의 황홀한 정경 속에서 조금 전 정령치 휴게소에서 봤던 한 사내를 생각해 냈다 적당한 흰머리가 나잇살을 말해주고 있는 사내 어깨가 다소 처져 있었고 이마에 굵은 주름살 지난 여정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던 사람 탁주 한 잔에 나물 안주 삼아 한적함을 즐기는 듯 느긋한 태도 빛 바랜 후락한 등산 자켓 풍기는 기품으로 보여 주는 건 식탁에 보다만 책 한 권이었다 표지가 주황색 바탕으로 흰 활자 제목 아 그 글을 보는 순간 분서갱유를 현대에 와서 볼 줄 나는 처연히 그 자리에서 몸서리를 쳤다 울렁거리는 또 다른 기포 잠시 초로의 사내는 나를 스치듯 지나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나름 격정의 시간을 살았다고 여겼는데 그 순간은 좌절이었다 바람이 지나간 설렁한 자릴 돌아봤을 때 기울어가는 석양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황망히 뒤쫓아 보았으나 가벼운 손짓이 멀리보이더니 산자락 속으로 들어갔다 얼음이 되어 불러보지도 못하고 지나간 순간 식탁에 놓인 책을 보았다 국방부 금서목록이었고 분서에 포함된 책 흑백사진 속 청년 시절 모습 나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거짓말쟁이로 취급할 것이냐 네 놈들에게 명령한다 나를 태워라‘ 도발적인 언어가 나를 쭈빗거리게 한다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는가 검은 테 안경 너머 지리산 산등성이가 나타난다 사위는 점점 땅거미가 자리하고 있다 노고단휴게소에서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안다 행복하다는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이 곳이 그렇다 또한 산세는 풍채 좋은 초로의 사내를 닮았다 휴게소 난로 곁에 몇몇 피곤한 얼굴들 화엄사 입구에서 먹었던 된장찌개 지금쯤 연신 찌개를 화덕에서 내 올 주인 모습이 어머니 손길처럼 따스하리라는 생각도 잠시 날이 차가워진다 행랑을 좁은 곳으로 옮겼다 다들 누웠다 이내 지리산 속으로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