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間諜) : 적대 되는 상대방의 내부에 침투하여 그 기밀을 알아내는 사람. ‘간인(間人)’, ‘간자(間者)’, ‘세작(細作)’, ‘첩자(諜者)’, ‘스파이’ / 동아새국어사전(문학박사) 이기문 감수 동아출판사 발행
간첩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았다. 내 고향 포천에도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왕방산 삼형제봉 기슭 저수지곁에 살던 허모씨가 고정간첩 제1호였다. 그의 동생 허모씨가 8남매 중 셋째였는데 6·25전 북에서 빨치산 교육(훈련)을 받고 남하하여 깊이울 집을 근거로 무장간첩 빨치산 은거지로 삼으려다가 형 허모씨는 당신 한국군 7사단 정보처 포천 파견대 전용택 상사에게 체포되어 고문에도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사망하였다. 도망간 동생 허모씨는 6·25가 나자 남하하여 신북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하였으며 가족들은 평양에서 혁명가(빨치산) 가족으로 우대를 받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포천출신 간첩1호였다.
또 여관 여 종업원 조모 여인은 미7사단 병력 이동 및 진지 구축을 탐지, 북에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고 여관에 취직하였는데 군병력이 이동하면 여관 앞에서 그 숫자를 세다가 주인에게 들키면 놀라는 모습을 수상히 여긴 여관 주인의 신고로 체포되었는데 이송도중 도망치다가 볏가리 속에 숨은 것을(치맛꼬리를 내 놓은 것을) 보고 다시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이상은 6·25전 간첩사건을 살펴보았다. 전쟁이 끝난 뒤 포천면 인민위원회 사무장을 지낸 이모씨(포천면사무소 앞에서 한약국을 하던 집, 큰아들)는 6·25 전쟁시 월북하였는데 부인과 자녀들은 서울 신당동에서 금은방을 하며 살았다. 이모씨는 월북하여 평양에서 대남공작 훈련을 받고 북에서 결혼한 부인과 자녀들을 평양에 남겨둔 채 남하하여 간첩활동을 하였는데 신당동 금은방을 거점으로 암약하였다. 둘째 아들 이모군이 덕수상고를 다녔는데 월남 간첩인 부친을 반겨 간첩화동을 하였으나 포천 인사 이모씨에 의해 신고되어 5년 실형을 받고 만기출소하여 신당동에서 아들과 살았다. 이씨는 북의 가족 때문에 전향치는 않았다.
이렇듯 우리 고향에도 민족주의자라는 미명하에 혹은 부패한 정부를 옹호할 수 없다는 구실로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 풍조, 러시아 공산당사를 탐독한 사이비 지식인들이 간첩행위도 하고, 공산주의자가 되고는 하였다.
지금쯤 간첩 자신과 가족들은 적색 북한에 동조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