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국민권익위원회, 코리아 연구원, 납북자박물관기념 증언기록조사위원회 등에서 6.25에 대한 증언을 요청 받아 증언을 남긴 일이 있다.
모두 포천시청의 요청이라고 하여 병객(病客)의 몸으로 녹음도 하고 녹화도 하고 내가 쓴 기록물도 제출하였다,
내 고향 포천은 서울에서 원산 그리고, 평양에서 서울을 잇는 대로변에 있는 고장이다 보니, 전쟁의 참화는 피할 길이 없었다. 고구려의 남하, 임진·정유왜란 그리고 병자호란, 왜놈의 침략, 6·25전쟁, 1·4후퇴, 수복, 휴전 등 수 많은 전쟁을 겪고 한 때는 고을의 인구가 없어 고을 사도를 임명치 못한 불행을 겪었는가 하면 굶주리는 고을백성이 많아 세금을 면제받은 부끄러운 일을 겪기도 한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끔직 했던 동족상잔의 참화의 외로운 영혼들이 한내천변과 산야에 잠들고 있다. 6·25가 발발하자, 북들은 지주, 자본가, 양반가, 공무원 가족, 경찰 군인 가족을 끌어다 총살하였다. 6·25당시 무고한 양민 즉, 상류층이란 죄로 죽은 영혼들이 한내천변과 물어고개에서 잠들었다. 9·28 수복후, 치안대란 임의 단체를 호병굴 박o만씨가 조직 의용군 도망자, 소년 인민의용군(남·녀) 등을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체포해 물어고개 골짜기에서 총살 매장하였는데 서울에서 북괴군에게 끌려간 여중생들도 다수 총살 매장을 당했다.
심지어는 포천중 간부라고 총을 메고 마구 행패를 부리다가 6·25시 부역한 교사·학생들을 끌어다 총살 하였다. 6·25가 발발하자 첫 희생자는 포천중 국어교사 최학규 선생님이었다. 포천초등학교 34회 졸업생들은 포천국민학교에서부터 반공정신을 고취시켰던 것을 인연으로 은사 최학규 선생님의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는 반공 충혼비를 묘소 앞에 세웠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왜정 암흑기, 6·25 이후 재판도 받지 않고 죽은 외로운 영혼은 물론, 전사한 군사들의 영혼이 내 고향 포천의 산야(山野)에는 외로이 잠든 수천명이 넘는 슬픈 영혼들이 이야기도 못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사형금지법 공포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오죽 많이 죽였으면…) 인간의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 더구나 같은 겨레, 같은 고향, 같은 이웃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도 없기 때문이다. 인격존중, 생명의 존엄성이 민주국가의 기본정신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