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전쟁 위기설까지 확산됐던 남ㆍ북 관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통일에 대한 희망까지 품게 될 정도로 개선됐다.
그 책임은 북한에 있다 하더라도 보수 정권인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당시 남ㆍ북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진보적인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남ㆍ북 관계가 크게 개선됐으니 이는 문재인 정권의 업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 통일은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망만으론 절대로 실현될 수 없고 냉철한 현실 인식도 겸비해야 이룰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실패로부터 우리는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김구 선생이 우리 모두가 존경해야 할 민족 지도자이자 애국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통일에 대해 당시 김구 선생은 냉철한 현실 인식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처절하게 패배했다.
당시 남ㆍ북 분단을 막기 위해 김구 선생이 선택할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비록 신탁통치가 포함돼 있긴 했었지만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그것의 총체적이고 원만한 실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이 잘 실현되면 한반도에 통일된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길어도 5년 이내에 통일된 정식 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반탁 운동에 앞장섰고 결국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은 무효가 됐다. 다른 하나는 남한 단독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이 남한 단독 정부의 대통령이 돼 북한과의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남한 단독 정부를 그대로 밀고 나가려는 이승만 세력을 크게 지지하지 않았다. 단독 선거 결과 총 200석 중 한국민주당은 29석만 차지했고 85석은 무소속 의원이었다. 당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다.
만약 김구 선생이 단독 선거에 출마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의 통일을 추진해 남ㆍ북 통일을 이루겠다. 그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가 잠정적으로 남한 단독 정부의 대통령이 돼야겠다”며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으면 당시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김구 선생 쪽 국회의원 후보들을 지지해 김구 선생은 남한 단독 정부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방법은 모두 거부하고 김구 선생은 지난 1948년 3월 “38선을 베고 쓰러질 지언정”이라며 평양으로 가 김일성이 주재하는 '남북 제(諸)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참석해 통일정부 수립 방안을 논의했다. 이는 ‘통일에 대한 열망’은 될 수 있었지만 ‘현실을 움직이는 정치’는 못 됐다.
이후 김구 선생은 한반도 영구 분단을 바라는 친일파 세력에 의해 암살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통일은 중요하다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통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자유이다. 자유없는 통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공산독재와 싸운 6.25 때도 유신독재,군사독재와 싸울 때도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걸고 싸워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