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정대부 이종국은 내 고향 포천 선단리에서 태어났다. 조선이 망하자 굴건제복으로 상복을 입으시고 향리 선단리에서 한양 땅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37일을 단식하고 매일 통곡하며 사배(四拜)를 올리니 님의 충정에 감탄하지 않는자가 없었다.
이종국은 귀족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고 높은 벼슬을 한 공신도 아니다. 몸소 울어나는 복받치는 충정은 스스로를 통곡케 하였으리라. 우리는 지금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읽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종국은 1880년 광서 6년 문과 을과 5인급제의 떳떳한 등과 반렬에 올랐으며 광무 10년 1906년 4월 24일 홍문관 시간, 12월 27일 정3품(正三品) 가자(加資 특진포상)를 받기까지 지평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지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당상관에 오르지 못하였으나 님은 틀림없는 충신이었으며 뼈를 깎는 강직한 인물이었다.
광무 9년 1905년 을사늑약을 맺기까지 24년간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직분을 맡았어도 충성을 다했던 인물이다.
다른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자마자 이튿날부터 땅을 팔고 소를 팔고 사돈의 팔촌까지 팔아 고위관직을 사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것이 상식이던 시절, 행직(行職)에서 충성을 다했던 님의 행적을 살펴보노라면 가슴이 저며오는 아픔을 느낀다.
‘나랏일이라면 어떤 직이면 어떠냐? 충성할 수 있으면 됐지….’
님의 거룩한 선비 정신은 청사에 및날 것이다. 그래서인지 후손 이웅묵 님을 비롯하여 많은 후손들이 님의 뜻을 기리고 후손들의 귀감이 되게 받들고 있으니 그 조상에 그 후손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