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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포천의 `주한 UN군` (2)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01월 22일
 
ⓒ 포천신문  
포천에 주둔한 6.25 전쟁 시, UN군은 참전국의 명예를 지키고 한국에 대한 원조를 잊지 않았다.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미군의 군수 물자는 자고 넘쳤다. 그래서 거리에는 양기 물건 노점상이 많았으며 모든 국민이 미국에서 보내 온 구호물자로 옷을 입고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군복을 검게 염색하여 입고 다녔다.

하루 한, 두 차례씩 UN군 헌병이나 경찰관들이 미 군수 물자의 판매를 단속하였으나 형식적이었으며 생필품의 절대량이 부족한 한반도의 전쟁터에서는 미 군수 물자와 구호 물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처지었다.

심지어는 미국에서 원조해 온 이 공법 480호에 의한 원조 양곡(미국의 잉여 농산물 : 쌀, 보리)을 미국 화물선에다 우리 돈을 주고 실어다가 시장에다 판 돈(대충 자금이라고 하였음)으로 나라 살림(국가 예산)을 하였는가 하면 미국에서 보내 온 재목으로 불타서 쑥대밭이 된 폐허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전쟁미망인들은 세계아동구호연맹을 비롯한 한국인에게 맞게 수선하여 판매하는 일을 하고 수고비를 받아 생활을 했다.

미국 및 캐나다의 양곡(주로 보리)은 한반도 한국인들의 생명의 양식이었다. 또, 70%만 출발지에서 보낸 군수 물자가 목적지에 도착하였으며 30%의 군수 물자는 중간에서 한국인들에게 도난당했다고 빙자하여 몰래 밀거래를 하는 미 군수 물자 암거래 상이 판을 쳤으며 공공연히 치부하는 모리배가 많았다.

그러나, UN군들은 알게 모르게 흘러나오는 미 군수 물자 유출을 눈감아주며 한국 민간인을 굶주림에서 헤어나오게 하였다. 맥아더 UN군 사령관 이후, 리지 웨이 장군, 워커 장군, 클라크 장군 등의 이름이 지금도 필자의 뇌리에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으며 맥아더 동상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고개 숙여지는 것은 필자가 친미주의자나 미제국주의자의 앞잡이여서가 결코 아니다.

6.25에서 9.28 서울 수복,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반도의 양민 수백만명이 굶주림과 추위에 떨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그들만의 잔치로 통일을 외치고 공산당원들의 승리만 외쳤지 UN군같이 피난민 구호 대책까지 세웠던 군대는 아니었으며 공산당이란 새로운 독재 지배세력의 등장이 6.25였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인민은 먹을 게 없어 굶주릴 때 공산당(남로당)원의 집에는 먹을 것, 입을 것이 많았다.

미국의 국제 방어선이 어찌 책정되었느냐에 따라 미국의 핵 무산의 보호를 받는다지만 맥아더 라인에서 제외됐던 1950년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피 어린 역사를 낳았던 것이다.

UN군은 내 고향 포천에 주둔하면서 학교도 지어 주고, 교회도 지어 주고, 먹을 것, 입을 것을 갖다 주고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의 의미를 가르쳐 준 은마를 타고 온 구원의 천사들이었다.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8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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