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구당서(舊唐書 당나라 역사서) 중 이원굉전(李元紘傳). 남산은 옮길 수 있을지언정 한 번 결심(결정)한 일은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때 남산가이(南山可移)라고 한다. 한 번 판결한 것은 번복할 수 없다.
구 당나라 역사서 이원굉 전(傳)에 있는 내용이다. 당(唐)나라 때 옹주군(擁洲郡)에서 호적을 관리하고, 민사소송을 판결하는 사호참군(司戶參軍)이라는 벼슬을 하는 이원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원굉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깔끔하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중이 찾아와 「어떤 사람이 절에 있는 돌로 된 말의 상(石馬象)을 훔쳐 갔다.」고 신고하였다. 이원굉 사호참군(司戶參軍)은 즉시로 수사요원과 포졸을 시켜 수사하여 체포하라고 명을 했다. 수사요원이 몇 달을 정밀 수사하여 찾아낸 것은 태평공주의 대 저택이었다.
태평공주는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세도가의 공자에게 출가하여 그 세력이 하늘을 찌를 듯 하다고 했다. 태평공주는 부모와 형제자매들 중에서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리며 귀하게 자랐다. 그러다 보니 호화와 사치를 일삼고 버릇없고 안하무인인 성격에 늘 제멋대로 행동했다. 권세를 앞세워 사람들의 전답(田畓)을 차지하는가 하면 재물을 빼앗곤 했지만 아무도 이에 반발하지 못했으며 조정의 문무백관들조차도 태평공주 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 했다.
황실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권세가였다. 이원굉 사호참군(司戶參軍)은 부마를 잡아 옥에 가두고 말의 석상(石馬象)을 절 안에 있던 곳에 가져다 놓으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원굉 사호참군의 상관인 현감 두회정(竇懷貞)은 후환이 두려워 즉시 사과하고 풀어주라고 명을 하였다. 그러나 이원굉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판결문 말미에 [남산가이(南山可移) 판불가요(判不可搖)-남산은 옮길 수 있어도 한 번 내린 판결은 결코 고칠 수 없다.]라고 여덟 글자를 덧붙였다.
남산은 장안성 남쪽에 있는 큰 산인데, 이원굉의 이 말은 원래 판결을 움직인다는(可搖) 것은 남산을 옮기기보다 어렵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절대로 변경할 수 없는 결정 따위를 비유해서 남산가이(南山可移)라고 한다.
한국의 정신적 문화유산이라는 조선시대 공직자들이 꼭 지켜야 할 불문율로, 사불삼거(四不三拒)가 내려오는데 사불(四不 하지말아야 할 네 가지)이란 “첫째로 부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 둘째로 땅을 사면 안 된다. 셋째로 집을 늘려서는 안 된다. 넷째로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다.” 는 것이고, 삼거(三拒 거절해야 할 것)는 “첫째로 윗사람이나 권력자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다. 둘째로 청을 들어준 답례를 거절한다. 셋째로 본인 친계 경조사의 부조를 거절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
참고한 자료 : [구당서(舊唐書) 이원굉전(李元紘傳)] [서강대자전-남산가이(南山可移)]. [이야기 고사성어-장기근 박사 감수 명문당 출판 책 중에서-남산가이(南山可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