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항우가 한 말로 富貴不歸故鄕(부귀불귀고향) - 부귀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如衣繡夜行 (여의수야행) -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 誰知之者 (수지지자) - 누가 알아줄 사람이 있겠는가.
원래는 의금야행 이었는데 금의환향과 같이 후세에 금의야행으로 변한 것이다. 이 말은 항우가 한 말로 정사에도 나와 있다. 항우가 홍문(鴻門) 잔치에서 유방을 죽이려다 실패하고는 서쪽을 향해 진나라 수도 함양을 무찔렀다. 그러나 실은 유방이 이미 항복 받은 뒤였으므로 단지 입성한 것에 불과하였다. 유방에 항복하고 연금 상태에 있던 진왕(秦王) 자영(子嬰)을 끌어내 죽이고, 유방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기위해 남겨 두었던 궁궐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그 유명한 아방궁의 불길은 석 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그 밖의 전각들도 모두 불타 없어졌다. 항우는 그의 할아버지 항연(項燕)이 전에 진시황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복수를 한다는 일념에 지나친 짓을 한 것이다. 항우는 금 은 보화와 궁중의 여인들을 모두 싣고 동쪽으로 향했다. 이 때 항우를 도와주려는 한생(韓生)이란 처사가 「관중(關中 :진나라 땅)은 험한 산천이 사방을 막아 있고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여기에 도읍을 정하면 천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하고 권했다.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불타버린 궁전, 파괴된 흉측스런 흉물에 불과 했다.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시를 짓고는 고향 땅으로 행했다. 아무리 입신출세를 해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 모양을 옛 친구들과 조상님들에게 알릴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항우는 간언을 듣지 않았다. 한생은 항우의 면전을 벗어나자말자 친구에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로서 겨우 관을 썼을 뿐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로 틀림없는 말이다.」(원숭이는 관이나 관대를 둘러도 오래 참지 못하는 점에서 초나라 사람의 성질이 사납고 거칠고 단순한 것에 비유하는 말) 한생의 말이 바로 항우에게 전달되어 한생은 끓는 물에 삶겨 죽이는 형을 당했다.
위의 시에서는 의수야행(衣繡夜行)으로 되어있으나 한서에는 의금야행(衣錦夜行 )으로 되어 있다. 항우가 얼마나 단순한 감정의 사나이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물네 살에 맨주먹으로 들고 일어난 그가 3년만에 천하의 패권을 잡았으니 고향에 돌아가 한번 크게 뽐내고도 싶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야사에는 관중에 머물러 있는 항우를 멀리 동쪽으로 떠나 보내기 위해, 장양(張良)이 이 같은 동요를 만들어 항우의 귀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항우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도 한다. ♣
참고한 자료 : [사기 항우본기] [서강대자전-금의야행(錦衣夜行)]. [이야기 고사성어-장기근 박사 감수 명문당 출판 책 중에서-금의야행(錦衣夜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