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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창종의 포천 이야기] ‘단학 도사’, 포천 현감 ‘정렴’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7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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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렴’은 연산군 11년(1505년)부터 명종 4년(1549년)까지 살았는데 중종 35년 포천 현감으로 부임, 얼마 안돼서 포천 현감 직을 버리고 간 인물이다. 그러나 천문, 지리, 점술 등에 능통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에 주목을 끌고 있다. 역사 기록인 ‘국조인물고’에는 조선시대 유의 즉, 의사이자 도교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온양 정씨로 우의정을 지낸 정순봉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의약, 복서에 밝았으며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었다. 상세히 말하면 양반가 즉, 선비 집안에서는 관심 밖이고 중인 계급인 상민들의 전달 직분인 천문학, 의약, 복서 등에 능했으며 시문에 능해 진사가 된 사실로 보아 정렴의 인간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음악가들이 관장하는 장악원 주부나 관상감, 혜민서 교수 등 천문, 의약, 음악과 관련이 있는 벼슬을 하였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황정경’, ‘참동계’, ‘음부경’ 등 외경을 즐겨 읽었다. 특별히 단학 수련에 힘쓴 바 있어 ‘해동단학파’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하니 현대 단학 연구의 전성기를 맞아 어떤 영향을 끼쳤나 하는 점도 연구의 대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 더 유명한 점은 ‘정북창방’이라고 하는 일상생활에서 경험한 처방을 모아 만든 책을 저술했다는 점이다. (양혜수의 ‘의림촬요’)

만년에는 양중의 괘라리, 광주의 청계사, 과천의 관악사 등에서 약재를 채취하여 인간 세상과 벼슬 길에 나서지 않고 인연을 끊고 살다가 명종 4년(1549년)에 죽었다. 묘는 양주 사정산에 있다. 저술한 책으로는 단학의 수련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수단의 방법을 적은 ‘용호비결’을 남겼다.

우리는 정렴의 생활 철학적 면모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일기 예보’, ‘천체·천기’, ‘의학·약학’에서 ‘생활 의학’,‘ 음악’, ‘점복·복서’, ‘시문’ 그리고 ‘진사’, ‘단학’, ‘신체 단련’ 등 극히 건전하고도 건강하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생할 철학자라는 점이 연구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한반도의 외래 종교가 아닌 전통 종교 사상인 도교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학자였으며 도사였다는 점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옛날부터 포천에는 점복, 복서에 능한 봉사나 만신이 몇몇 있어 왔다. 종교적 개념으로 볼 때에는 민속 신앙이나 점복, 복서 등은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으나, 오랫동안민간 신앙으로 숭배에 대상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발진티푸스(법정 전염병)’가 크게 유행하던 1940년대 말, 왕방산 이서방, 봉사 이영감, 군내면 만신 할머니 등이 크게 활약했다는 사실은 혹시 정렴 현감의 영향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벽운 김창종 / 수필가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7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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