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말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또한 그 중요한 말을 실수하여 난처한 일을 겪기도 하고, 심지어 그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무엇이든 중요한 일은 그만큼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남에게 죽을 만큼 상처를 주거나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는 참으로 무섭고,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촌철살인(한 치의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간단한 말로도 남을 감동하게 하거나 남의 약점을 찌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이 말이라는 것이 묘한 것은, 그것이 발화되는 순간 너무나도 파장이 크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바로 말 한마디가 발단이 되고, 한마디 선고로 대통령이 물러나기도 하고, 한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의 말 한마디가 두 사람의 인생을 함께 하도록 해 주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는 한 마디의 독설로 누군가는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활하다 보니, 나는 학생들과 사회적 소통망(SNS, Social Netwok Servics)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휴대전화로 연결하는 사회적 소통망만 해도, 서너 개가 될 정도다. 이러한 소통망에는 나의 일상과 생각을 올리는 기능뿐만 아니라 일 대 일로 소통할 수 있는 기능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단적인 예로, 과거에는 “문자할게”였는데, 어느 순간 “카톡할게”로 바뀌더니 이제는 “페메(페이스북 메시지)할게”로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지각생들이 문자로 연락을 하더니, 이제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아주 간단히 지각을 예고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소통망은 그 소통이 이루어질 때, 휴대전화 화면에 발신자의 사진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손가락으로 끌어서 밑으로 내리지 않는 이상, 발신자의 얼굴이 화면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효과를 자아낸다. 이러한 재미와 기능으로 말미암아 요즘 학생들과 젊은이들 사이에는 이러한 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떠한 소통수단이 나타나 유행을 탈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지금의 시대에는 소통 수단이 난무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소통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이러한 소통의 홍수 속에서 안타까운 반대의 상황도 함께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차단이다. 어떤 소통망일지라도 역시 그 상대방을 차단하는 기능이 갖추어져 있다. 가끔 학생들의 소통망을 보면, “차단 좀 풀어줘!”라고 애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장난으로, 또는 상대방을 길들이느라고, 또는 남녀간의 밀당(밀고 당기기)수단으로 이런 것을 하는 것이니, 요즈음의 신세대 SNS풍속도(風俗圖)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은 나도 이러한 차단이라는 것을 당해 본 적이 있다. 그 차단이라는 것을 당해 보니, 단순히 풍속도라고 운운할 것이 아님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었다. 다름 아닌, 차단은 상실감이라는 것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대방으로부터의 차단이 이루어지는 순간, 더 이상 나의 소통망이 끊겨버리고 마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차단할 때는 반드시 장난이 아닌 이상 이유가 있다. 차단의 일차적 원인 제공은 당연히 상대방으로 하여금 차단시키게 한 나의 문제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다음은 차단자의 몫도 있다는 것이다. 차단은 곧 “나 할 말 끝났으니, 더 이상 너 말은 들을 필요 없어!”의 의미가 된다. 내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 일어날 수 있는 상대방의 항변에 대해 더 이상의 여지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 곧 차단이다. 그래서 소통이 관계를 살찌우고, 봄바람을 불게 하지만, 차단은 관계를 날카로운 칼로 실을 끊듯이 끊어버리고, 차단을 당한자에게 억울함과 상실감을 주는 것이다.
소통과 차단! 이 두 상반된 두 얼굴이 요즘의 우리 언어 산책로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어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의사소통 기능이 요즈음 심각한 관계 차단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이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차단보다는 더욱더 진지한 소통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하고 사는 이 세상에, 차단은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 이 세상 차단자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 건네며, 다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