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직업(職業)을 일반적인 용어로 오큐폐션(occupation)이라고 한다. 일이란 뜻이다. 다른 말도 있다. 쟙(job)이라는 말도 있고 콜링(calling)이란 말도 있다. 쟙이란 생업(生業)을 말하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직업이다. 소명은 그게 아니다. 소명은 부름을 받아 하는 것이다.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이 바로 소명(召命)이다. 기독교에서 수도자나 사제(司祭)같은 특수한 신분으로 신(神)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신의 부름을 말하는 것이다. 임금이 신하를 궐내로 부를 때에는 어떠한 일이나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로 소명은 어떤 일이나 임무를 하도록 부르는 명령을 의미한다.
쟙(job)은 자신의 의지(意志)가 작용하는 능동적인 것이다. 누구의 명을 받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필요해서 찾는 것이다. 구[求職]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콜링(calling)은 나[我] 아닌 다른 의지가 작용하는 수동적인 것이다. 다른 의지가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일수도 있고 국가일수도 있으며 특정단체일수도 있다. 부르는 것이다. 콜(call)하는 것이다. 명[命令]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자는 소명의식(召命意識)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봉사(奉仕)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獻身)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사명감(使命感)을 가지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공직(公職)은 군림(君臨)하는 자리가 아니다. 명[召命]을 받은 자리이다. 헌신하고 봉사하라는 명을 받은 자리이다.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살피듯이 나라 일을 살펴야 한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항상 노심초사(勞心焦思)해야 한다. 애태우고 고민(苦悶)해야 한다. 사[私益]를 버리고 공[公益]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국익(國益)을 생각해야 한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역사에서 보지 않았는가? 왜 임진왜란을 당했는가? 병자호란을 당했는가? 당리당략에 연연하다 당한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안일(安逸)에 빠져 무위도식(無爲徒食)하다 당한 것이다.
위정자는 전문가를 중시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네 편 내편을 가리지 말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1893년 10월 일본은 금본위제 도입을 위해 전문가 기구로 ‘화폐제도 조사회’를 설치했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천 년 가까이 은화경제권이 작동하고 있어 은본위제에 머무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그들은 전문가 주도로 ‘글로벌 스탠더드’인 금본위제 도입을 결정했다. 그 결과 해외에서 자금을 차입하는 것도 용이해져 러일전쟁을 치르는 기반을 마련했고 한국을 강점하는 길을 열었다. 전문가가 기초를 닦고 씨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는 고금(古今)의 일본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이다.
공직자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임해야 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공직자의 판단이 국운을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銘心) 또 명심해야 한다. 19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임금을 포함한 투입 비용이 상승하기 시작하였을 때 싱가포르는 기술 혁신에 방점을 두고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대응했다. 하지만 홍콩은 대륙의 저임금을 찾아 공장을 옮기고 대신 이를 지원하는 금융과 써비스를 집중 육성하는 쏘프트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전략적 선택의 차이가 결국 오늘날 한 도시에서는 일자리를 만들고 또 다른 도시에서는 우울한 미래를 맞게 된 것이다.
‘철밥통’이란 말이 있다. 공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철밥통에 안주(安住)해서는 안 된다. 직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살펴야 한다. 귀천(貴賤)을 따질 일이 아니다. 귀천을 따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사회에 기여(寄與)할 수 있는 바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천직(天職)이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면 이보다 훌륭한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