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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김영관] 8.15 광복의 기쁨은 어디로 갔는가(1)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7년 07월 20일

 
ⓒ 포천신문  
지금은 아무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수 있지만, 8.15 해방 전에는 애국애족하는 의롭고 용기 있는 애국자만이 외칠 수 있었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만 했다. 하물며, 일제 때 10대의 젊은 나이로 광복군이 되어 만주 벌판과 중국대륙을 누비며 조국광복을 위하여 풍찬노숙하시며 일제와 싸우셨던 독립투사가 계셨으니 포천 영평 출신 김영관 선생이시다. 얼마 전, 연세가 94세로 높으시어 두려운 마음으로 8.15광복의 의미와 당시의 상황을 기록해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었다. 독립운동을 말로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총칼을 들고 일제와 싸우신 분이라, 아직도 기상이 청정하시고 굳건 하시어 선뜻 응해 주셨다. 얼마 전에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직언을 서슴없이 하시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과연 독립 투사는 다르시다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8.15 해방 전의 체험하신 생생한 역사를 기록에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되어 귀중한 옥고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선생의 글을 8.15 특집으로 3회에 걸쳐 기록하게 됨을 다행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영관 선생이 계시어 우리 포천시민들이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면하게 됨을 큰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발행인 주>

악랄하고 혹독했던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나면서, 다가올 우리의 자주독립과 무지개같은 미래를 꿈꾸며 3천만 온 겨레가 다같이 마음을 합쳐 작약하며, 기쁨으로 춤추었던 8.15 광복의 감격과 희망찼던 꿈, 그리고 그 기쁨은 아직도 우리 뇌리에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온 천하가 우리의 미래를 축복해주는 것 같았고, 환희와 기쁨으로 온 겨레가 하나로 뭉쳐 흥분한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 광복의 기쁨과 감격 그리고 미래의 다짐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디로 사라졌는가. 도리어 혼란과 불안, 분열과 파당 행위만 만연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실상이다.

나는 일본 패망의 그날, 광복군으로서 중국 장시성 상라오 소재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 숙영지에서 숙적 일본의 패망 소식을 듣고 막사를 뛰쳐나와 동지들과 어깨동무하며 작약하고 춤추며 소리 높여 만세를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를! 이웃 중국 주민들도 함께 어울렸다. 시내 쪽에서는 일본 항복을 경축하는 폭죽 소리가 요란하다. 의외로 빨리 찾아 온 일본의 패망 소식은 더욱 우리를 흥분시켰다. 지난해 강제 징집된 일본군을 탈출하여 사선을 넘어 여기 중국 제3전구 사령부가 있는 장시성 첸산과 허커우전을 거쳐 상라오로 이동하면서, 최전선의 긴장과 경계, 대일 공작 수행, 그리고 본토 침투 훈련 등으로 젊음을 불태우며 일본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 온 기쁜 소식에 우리는 더욱 반가웠고, 흥분하면서 만세를 연호했다.

며칠간의 기쁨과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우리의 임무를 새삼 상기하고, 화평 지구(일본군 점령 지구)로 조속히 진출하여 교민의 생명 재산 보호와 일본군에 적을 두고 있던 한국 청년들의 인수 문제 처리를 서둘러야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서둘러 선발대를 파견키로 했다. 나를 포함해서 7~8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는 빠른 시일 내에 항저우를 경유해 상하이로 진출하여 임무를 수행키로 결정하고 숙영지 상라오를 뒤로 하고 기차로 출발했다. 그러나 전시의 철도 파괴로 몇 역을 못 간 위산역에서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역 구내는 일본군의 폭격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파괴된 개화차 잔해가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었고, 엿가락처럼 휘어진 레일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었다. 비참한 전쟁의 상처는 목불인견이었다.

임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지체할 수 없어 우리는 육로 도보로 우후 난징을 거쳐 상하이로 가는 길밖에 없음을 확인하고 실행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 행로는 신사군(공산군)의 세력하에 있었고, 지극히 치안상태가 불안하여 위험하다는 주민들과 당국의 충고와 만류도 있었으나 우리는 임무의 시급함과 중요성을 감안하여 즉시 출발을 강행하기로 했다. 갖고 있는 무기 라야 각자의 중국제 권총 몇 자루가 다였다. 거미줄같은 수로를 우회하고 우거진 숲을 헤쳐 가며 긴장 속에 며칠을 걸으면서, 무법 지대를 지나가는 위험을 피해 선편을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양자강 지류를 따라 난징 방향으로 이동하는 장개석 국민당 정부 요원들의 이동 선단을 만나 이에 합류하기로 했다. 배 한 척을 구해 30여척으로 구성된 범선 선단에 합류하여 강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돛단배 선단의 위용은 장관이었다. 오른쪽 둑으로는 국부군 일개 부대가 선단을 호위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적잖이 마음이 놓이고 안심되었다.

김영관 / (전) 한국 광복군 동지회 회장 (포천 영평 출신)

*칼럼 및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7년 0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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