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은 1895년 10월 8일 새벽(음력8월20일). 서울에 주둔중인 일본 군인들이 느닷없이 경복궁을 침입한 뒤 남의 나라의 황후(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다. 지금부터 꼭 122년전의 일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치욕이다. 그러나 우리는 을미년이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할 우리의 역사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치욕적인 일이 있었을까? 우리에게는 물론 치욕이지만 일본으로서도 그에 못지 않은 수치스러운 사건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사건을 두고 어느 때 한번 수치라고 여겨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예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것인양 시치미를 띄고 있으니 말이다. 적반하장격으로 도리어 2차대전 최대의 침략군이면서 피해국인 것처럼 위장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아시아인은 2,000만명이 희생당했다. 물론 자국민도 310만명이나 된다. 그러나 현재의 아베정권에서는 처형당한 일본의 전범마저 억울하게 죽은 전쟁의 영웅으로 대접하여 추모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과연 이들과 함께 인류번영의 길을 걸어 갈수 있을지가 자못 저어되는바가 없지 않다.
카이로 선언이란 또 무엇인가? 1947년 11월 27일 연합국인 미·영·중 삼국정상(루스벨트, 처칠, 장개석)들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모여 발표한 선언이다. 이 선언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위 3국은 조선 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맹세코 조선을 자주독립시킬 결의를 다짐한다.”
이 선언이야 말로 대한민국에게 광복의 단초를 열어준 기적적인 종소리라 할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는 데에는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했지만 삼켰던 조선을 토해 내는 데에는 자신들도 모르게 이루어 졌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 바로 이 선언이다.
일본은 조선을 병탄하기 위해 1894년에는 청일전쟁을 일으켜 조선에 대한 청국의 간섭을 배제시킴과 동시에 배후조정을 통해 갑오개혁을 도모하여 왕권을 약화시키는 작업을 서둘렀다. 이어 1895년 을미년에는 앞에서 본 것처럼 러시아를 끌어 드려 일본을 배척하려는 명성황후를 무자비하게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화를 도모하기 위해 청국은 물론 영국과 미국 내지는 러시아와도 수도 없는 국제 협약과 전쟁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에 더하여 수많은 조선인들의 의병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면서 힘겹게 조선을 병탄할 수 있었다. 속된 표현대로 하면 일본은 천신만고 끝에 병탄한 조선을 자신들도 모르게 카이로 선언 하나로 잃게 되었고 한국에는 광복이 소리도 없이 찾아 온 것이다.
카이로 선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또한 기적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다. 회담은 각국 정상들이 대동한 수도 없는 군사지휘관들과 기자들로 북적거리는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회담의 주인공도 참석하기로 한 소련의 스탈린이 불참함으로써 대신 중국의 장개석이 참석하게 되었다. 회담 장소 또한 스탈린은 카이로가 아니라 테헤란을 고집하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영국은 독일문제가, 중국은 중국내의 일본세력축출이 최우선의 관심사였던 데에 반해서 미국과 소련은 제각기 전후처리문제에 대한 전략짜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나라 수장도 한국만의 독립을 염두에 둔 적은 없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카이로 선언에서 특별히 조선을 거론하면서 독립을 보장하였을까가 자못 궁금하다. 혹자들은 장개석총통의 역할이 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학자(정일화)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인 해리 홉킨스(Harry Lloyd Hopkins)가 홀로 만들었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개석의 경우에는 오히려 조선에 대한 점령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고도 하는 설도 있는 형편이다. 또 홉킨스의 경우에는 그가 어떤 연유로 조선독립을 거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설명이 흡족하지 않은 것으로 필자는 이해된다.
그러기에 수도 없는 식민지중에서 유독 조선만을 거명하면서 독립을 약속하는 선언을 하였다는 사실이 기적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는 얘기다. 그 선언 중에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독립시킬 것이라고 천명한 부분이 훗날의 신탁통치안과 무관하지 않다(김일영)고 하더라도 그 선언이 기적적이라고 설명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같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외교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는 조선을 위해 삼국정상들이 모여 카이로 선언을 하게 된 것이 단순한 기적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우리민족이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스스로 돕는” 독립운동이 없었더라면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분단 70년의 역사도 분명히 기적적으로 그 해체의 순간이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 이전에 스스로 도우려는 노력 없이 기적처럼 통일되기를 바란다면 그런 기적은 없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