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몸담고 있는 절을 자랑하여 상경하던 허풍쟁이 스님 이야기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오늘까지도 우리를 웃기게 한다.
옛날 세 스님이 절을 떠나 상경(上京)길에 올랐다.
삼남지방(三南地方)의 절 중에서도 그 크기를 자랑하는 세 절은 유명한 불교 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다.
“아, 글세 내가 몸담고 있는 절은 어찌나 크고 웅장한지 중들이 먹을 밥을 짓는 솥이 하도 커서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솥 위를 떠다니며 물을 조절하지요.”
두 번째 스님도 질세라 허풍을 떨어가며 침을 튀겼다.
“아, 글쎄 내가 몸 담고 있는 절은 그 크기가 하도 커서 해우소(변소)에서 대변을 보면 아침에 본 변이 3일 후에나 해우소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요.”
“아니, 그것도 큰 절입니까? 우리 절은 판도방(거처의 잠자는 방)아랫목에서 맨 윗목까지 가려면 말을 타고 3일은 달려야 한다니까요.”
허풍 치고는 너무 허풍이어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 글쎄 고려 팔만대장경판이 임진·정유 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무사히 오늘 날까지 전해 오는 줄 아십니까? 서산대사께서 법주사에서 아침 세수를 하시는데 해인사 대장경판각 쪽에서 화재가 일어나 금방 대장경판이 불에 몽땅 탈 위기에 봉착하지 않았겠습니까? 멀리 해인사쪽까지 바라보시는 영험함이 있으신 서산대사께서는 세수하시던 물을 해인사 쪽으로 높이 들어 쏟으시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해인사 쪽에서는 소나기가 되어 대장경판각에 불을 껐다고 하지 않는가.”
스님들의 말씀이 해인사 통도사 법주사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하도 허풍이 세서 웬만한 사람은 웃다가 배꼽을 잃기 일수였다고 한다.
안동의 서애 유성룡 대감의 형님이야기나 임진록의 스님 일본 방문기는 더욱 놀라운데 한국판 무릉도원이야기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낳기도 하였다.
내 고향 포천의 사랑방 전설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위의 세 스님 이야기도 그중 몇 토막의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