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지사(憂國之士)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걱정한다는 말이다. 이와 아울러 지사(志士)라는 말과 책사(策士)라는 말도 있다. 모두 나라를 걱정하고 운영하는데 고심(苦心)하는 사람들이다. 지사란 크고 높은 뜻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바쳐 일하려는 포부(抱負)를 지닌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애국지사(愛國志士)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포부란 마음속에 지닌 생각이다. 앞날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希望)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대(遠大)한 포부란 말을 하는 것이다. 원대하다는 것은 계획이나 희망 따위의 규모가 크고 깊다는 것이다.
책사란 계책(計策)을 세우는 사람이나 그 계책에 능(能)한 사람을 말한다. 계책이란 꾀나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다. 그 꾀나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목적(目的)이 설정(設定)되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具體的)인 계획과 묘안(妙案)을 짜내는 것이다. 적부(適否)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가부(可否)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성패(成敗)를 따지는 것이다. 결과(結果)를 따지는 것이다. 가능성(可能性)을 내다보는 것이고 성공여부(成功與否)를 점쳐보는 것이다. 제갈량(諸葛亮) 같은 군사(軍師)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뜻이 좋고 의로운 일이라도 그것을 받쳐줄 책사와 책략(策略)이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한 나라를 다스리려면 지사도 있어야 하고 책사도 있어야 한다. 물론 지사가 상위개념(上位槪念)이다. 지사가 없고 책사만 있다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사회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무도(無道)한 사회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지사는 크고 높은 뜻을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무엇을 위한 크고 높은 뜻인가? 나라를 위한 크고 높은 뜻이다. 사(私)가 아니라 공(公)을 위한 크고 높은 뜻이다. 당리당략(黨利黨略)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한 높은 뜻이다. 나라가 있어 내가 있는 것이고 나라가 있어 자유(自由)와 평화(平和)를 구가(謳歌)할 수 있는 것이다. 참되고 복(福)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지사는 없고 책사만 우글거린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누구 하나 나서는 어른을 볼 수 없다. 아니 걱정하는 정치인(政治人)을 볼 수 없다. 모두들 목전(目前)의 이익(利益)에만 골몰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강대국의 함포(艦砲)와 미사일이 아니 적대국의 핵폭탄이 우리를 조준(照準)하고 있는데 삿대질만 하고 있으니 어찌 해야 하는가?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 하지 않았는가? 나라를 지키는데 잠시도 방관(傍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때 도움도 받는 것이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귓전을 때리는 오늘이다. 지도자가 국제정치의 문법(文法)에 아무리 충실하게 전략과 전술을 구사(驅使)하려 해도 일치단결(一致團結)해 밀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만다. 정치인들과 언론 그리고 국민이 국내정치의 문법에만 몰두한다면 외국에서 어찌 보겠는가? 우리는 초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소국이다. 거기에다 핵무장으로 위협하는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狀況)에서 생존이 걸린 외교 안보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뭐라 하겠는가? 지금은 분명히 난세(亂世)다. 난세에는 지도자도 온 국민도 난세답게 행동해야 한다.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앞세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을 보라. 도처에서 겁에 질려 벼슬아치들이 맡은 지역을 버리고 왜군이 없는 쪽으로 달아날 때 장군은 왜군이 없는 자기 지역을 떠나 왜군이 횡행하는 경상도 바다로 진군(進軍)했다. 그 행보는 눈부시도록 강력했다. 그처럼 장렬(壯烈)한 행동을 하게 만든 원천(源泉)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나라의 주인이자 군사 지도자로서 이 나라는 내가 몸소 지켜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와 소신(所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