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모범운전기사들이 개인택시나 모범택시를 운행하기도 하고 교통결찰관을 도와 교통정리도 하고, 교통질서 확립에 힘쓰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쉬는 날인데도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새벽녘에 일찍이 교통 혼잡지역을 찾아 땀을 뻘뻘흘리며 교통지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내 고향 포천의 소흘읍은 단위 읍면 지역으로 가장 많은 자동차 보유 마을이라는 소문을 들으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들기도 한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는 서울을 1일 1회 왕복하는 경포차부(京抱車部)가 있었는데 40인승 닛산버스 2대였다. 그리고 식량연단 마루보시 도요타 트럭이 3대 있었는데 만주 관동군 군속으로 나갔다가 운전수로 근무하며 따온 면허증으로 5명의 운전기사가 마루보시 운전기사를 하였다. 해방이 되자 박전만 씨 3형제가 트럭 운전을 하였는데 미군 트럭을 사용연한이 지났지만 이를 불하받아 운행하였으며 가채리 조씨와 허씨, 함씨가 새로 트럭을 불하받았는데 이스즈, 도요타, GMC 신형들이여서 구경거리였다.
그런데 그 때만 하여도 깊이울을 넘어나니며 숯, 장작 등을 운반하던 트럭들이 물어고개나 축석령에서 전복사고를 일으켜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으며, 운행중 성냥짐에서 화재가 일어나 큰 사고를 발생시켜 포천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래서 포천이 발전하려면 ‘물어고개’와 ‘축석령’을 깎아 없애야 한다는 소리가 많았다. 1946년 신읍 사거리의 정모군 교통사망사건 외 1건의 교통사고와 축석령 트럭 전복 인명사망 사고는 포천인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으며 미군과 소련군 군용트럭과 한국군 보병 1연대 군용차량의 폭주는 조용하던 포천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가채리 함씨는 유일한 모범운전기사였다. 경기도지사로부터 20년 무사고 운전기사 표창을 받는가 하면 마음씨 고운 효자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가채리에 살던 함씨가 신읍 장거리로 이사 온 후부터는 매우 인기있는 모범운자기사로 유명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가채리 함씨가 손수 작사 작곡한 ‘모범운전의 노래’는 더욱 유명하여 장거리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함씨가 장거리(長距離) 운행을 마치고 귀가한 날 저녁에는 무사고 운행을 자축하는 술자리 자축연이 함씨네 대청마루에서 열렸는데 이 자축연에서는 꼭 빠지지 않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모범운전의 노래’ 합창이였다.
‘스타팅을 돌려라 붕붕 나가신다. 크래치를 띠고 악세레다 밟으며 시동 걸고 나가신다 우리애마야…’
목탄차, 가스차, 휘발류차 중 목탄차는 새벽 2시간 운행전 숯불을 피워 운행준비를 하고 서울로 출발하면 축석령과 미아리 고개에서 조수(助手)가 뒤로 미끄러지면 후진해야하는 것을 방지하며 고생을 해야 서울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