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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 칼럼] 기인들의 기행


포천신문 기자 / ipcs21@hanmail.net입력 : 2017년 04월 16일
 
↑↑ 농암 김중위 전 사상계편집장, 환경부 장관
ⓒ (주)포천신문사 
수주(樹州) 변영로 선생의 수필집 『명정 40년』을 보면, 그는 대낮에 명륜동 뒷산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비가 내리자 알몸으로 소를 타고 산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반세기도 전에 읽었지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얘기다. 젊었을 때부터 가방에 아령을 가지고 다녔던, 그의 형 변영태 선생 역시 그와 비슷하게 기인의 끼가 있지 않았나 싶은데, 때때로 웃통까지 벗어부치고 남들 앞에서 자랑삼아 운동하던 선생을 나 또한 본 적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는 외무부 장관으로 외국 출장을 갈 적에도 아령을 잊지 않았었다. 형제가 모두 약간씩 기인(奇人)의 끼를 지니고 있는 것은 꽤 드문 일이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는 진경산수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18세기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이 뛰어난 그림 실력과 함께 기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김시습, 방랑 시인 김삿갓, 오성과 한음 등도 기행奇行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인물이겠지만 이들은 최북에 비하면 일반인에 불과하다. 화가라는 점에서 그는 반 고흐와 비견되기도 하는데, 반 고흐는 정신착란증으로 자신의 귀를 잘랐지만, 최북은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렀으니 아무래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북만한 기인은 없을 성싶다.

그의 기행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국의 기인 열전』이나 『근원 수필』에서 읽은 것이지만, 요즘 세상이 제정신만 가지고는 살아가기 어려운 것 같아 차라리 나도 그런 사람처럼 남다른 기행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에 다시 한 번 이곳에서 되뇌어 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가 준 이름으로 살아가기 마련인데 최북은 어쩐 일인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이름은 북(北), 자(字)는 이름을 둘로 파자(破字)하여 칠칠(七七), 그리고 호(號)는 붓 하나로 먹고살겠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라 지었다. 그의 이름과 자는 남에게 괴롭힘 당하는 대상인 동네북과 어딘가 모자라는 칠푼이를 연상하게 한다. 어쩌면 일부러 그런 뜻으로 지은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칠칠 49세가 되는 해에 죽었다는 설이 있으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까지도 짜 맞춰 자신의 이름을 지은 것 같다.

범상치 않은 이름 등에서 느껴지듯이 그의 기행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금강산 구룡연에서는 자기 같이 멋진 사람은 이런 곳에서 죽어야 한다며 뛰어내리기도 했고, 한 수 한 수 무르다 보면 끝이 안 난다며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바둑 한 수 무르는 법이 없었다. 술을 좋아하여 하루에 대여섯 되의 술을 마셨는데,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자신의 집 울타리까지 팔아 술을 마셨고, 금주령에는 초상집을 찾아다니며 곡을 하고 술을 얻어 마셨다. 그러니 술을 팔 사람으로 최북만한 사람이 없어 그의 집 앞에는 언제나 술장사들이 저자를 이루었다.

그림과 관련된 기행은 더욱 유명하다. 그는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해도 그림 볼 줄 모른다고 상대에게 욕을 했고, 못 그렸다고 해도 그림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 한다고 화를 냈다. 자기가 보기에 잘된 그림인데 돈을 적게 주면 그림을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고, 마음에 안 차는 그림인데 돈을 많이 주면 껄껄 웃으며 차액을 돌려주었다. 산수화를 잘 그려 최산수라는 별호도 얻었던 그는 산수화를 그려달라고 하면 산만 그려주고는 주문자의 항의에 종이 밖이 다 물이니 굳이 그릴 필요가 없다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쪽 눈을 잃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하루는 세도가가 거만한 태도로 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아니꼬운 생각에 그림을 그려주지 않자 세도가와 그 사이에는 실랑이가 오갔다. 세도가가 하인을 시켜 그를 매질하려 하니, 그는 “내 몸은 내가 마음대로 할지언정 남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송곳으로 제 눈을 찔렀다. 최북 기행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까지의 기인이나 기행은 아니더라도 국회의원 한 번 해보겠다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 이때의 정치인들도 여간 기인이 아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의 초상집을 찾아가 시체를 염하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고, 동네 사람 결혼식에서 주례란 주례는 다 서고 나서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다. 오로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그들은 직업도 없이 허구한 날을 그러고 다녔다고 한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짓이 아니다. 기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거에 출마할 적마다 떨어지던 어떤 국회의원의 재야 시절 이야기다. 하루는 외도(外道)하고 집에 돌아와 옷을 벗는데 내복 허리춤에 웬 여자 스타킹이 끼어 매달려있는 것이 부인 눈에 띄었다.

“당신 허리춤에 웬 여자 스타킹이야? 당신 지금 딴짓하고 왔지?”

그는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했나 하고 깜짝 놀랐으나 직업도 없이 잘도 능청 떨면서 평생을 살아온 이력으로 금방 둘러대는 기지를 발휘한다.

“응! 지난번에 당신하고 가봤던 아무개 사주쟁이 집 있지? 오늘 그 집에 갔더니 말이야 이번 선거에는 꼭 당선될 거라고 하면서 대신 남의 여자 팬티나 생리대, 스타킹이나 뭐 이런 걸 걸치고 다니면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차본 건데 당신이 싫다고 하면 나 안 차고 다닐게.”

부인은 그것을 못 차고 다니게 했다가 또 선거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아니야! 꼭 차고 다녀요. 이번 선거에는 꼭 이겨야지요!”라고 남편을 독려했다고 한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중앙정보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정치인을 미행하고 도청하던 시절, 어떤 의원이 남의 집 고운 딸과 연애하다 헤어졌다. 그가 총선거 합동 연설장에서 자기 차례가 되어 막 연설을 시작하려는데 어떤 부인이 연단에 올라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냅다 고함을 질렀다.

“야! 이놈아! 내 딸 어떻게 할 거야 이놈아!”

무슨 연유로 이 부인이 그러는지 아는 그는 재빨리 청중을 향해 이렇게 연설했다고 한다.

“여러분! 지금도 보셨지요? 중앙정보부는 악랄하게도 이렇게 선거 현장에까지 프락치를 내세워 선거를 방해하고 공작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여러분!”

옛날에 있던 일화들이란 달빛에 빚어 구워내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내놓아 산화되면 우스갯소리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농암 김중위 / 전 사상계편집장,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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