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빨라서 카자흐스탄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온 날짜를 세어보니 여기에 온지 벌써 두 달 반이 되어간다. 그 짧은 기간에 한국에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커다란 정치적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필자는 카자흐스탄에 한국학 관련 국제학술회의로 여러 차례 다녀간 적이 있어 낯설지 않다. 연구년을 지낼 곳을 찾다가 우연하게 크즐오르다 국립대에 오게 되었다. 그래서 크즐오르다 국립대가 유럽식 학기제라 1월 23일 개강이라는 연락을 받고 한국대학 학기가 마치자마자 겨울방학을 모두 반납하고 출국준비에 들어갔다. 이곳 생활을 위해서 방한복과 밑반찬 등의 먹거리, 약품, 셰익스피어 강의 자료 등을 정신없이 준비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다. 하지만 한겨울 일월중순에 크즐오르다에 도착한 후 매일 분주하게 강의와 논문 마무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에 별로 새로운 일이 없었지만 계절은 바뀌고 말았다.
계절의 변화에 대해 쉽게 언급을 했지만 사실 필자가 전에 카자흐스탄에 주로 왔던 때는 학술대회가 열리는 여름에 이루어졌었다. 그나마 주로 알마티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크즐오르다에 대해서 완전히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이번에 카자흐스탄에 입국하며 먼저 알마티에서 이틀 동안 체류하며 그곳의 온화한 날씨를 즐기면서 크즐오르다의 추위에 대해 약간 긴장을 풀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예상은 완전히 전복되고 말았다. 얼굴이 얼얼한 정도가 아니라 살이 에이는 추위는 이방인이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전혀 낯선 곳에 고립되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것을 만나면 호기심이 생기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별난 재미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의 경우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크즐오르다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진 동기는 고려인들의 연해주로부터의 강제이주로 인한 첫 정착지라는 역사적 정보뿐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묘가 있고, 그곳에 있던 원동고려사범대학과 고려극장이 이곳에 다시 지어졌다는 역사적 기록이 내게 학문적인 호기심을 강하게 주었다. 또한 구소련시절에 고려인들이 사막과 다름없는 이곳에 제3인터내셔널 집단농장을 건설하고 효과적으로 이끌어 쌀농사에 성공한 나머지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역사적 자료들은 고려인들의 비극적인 삶의 궤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곳에 도착한 다음날 동료교수의 안내로 가장 먼저 이곳의 주요한 역사적 사적들을 방문하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내에 위치한 홍범도 장군묘는 겨울이라 그런지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제3인터내셔널 집단농장에서 뛰어난 지도력과 경영으로 영웅칭호를 받은 최정학 선생의 기념관도 조촐한 가옥에 꾸며져 있어서 그의 명성만큼 기념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공원 곳곳에 웅장하게 세워진 카자흐스탄 또는 크즐오르다 영웅들의 동상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소수민족에 불과한 고려인들의 사적이 이곳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 지 필자는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또한 고려인 관련 사적에 대해 누가 관리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카자흐스탄의 정치적 또는 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할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이방인의 입장에서 선조들이 이곳에 와서 겪어온 고통스러운 삶의 과정을 어렴풋하게 상상하면서 이 사회에서 한국의 국격에 맞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인 것이다.
필자는 크즐오르다 국립대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면서 그들의 순수한 이미지와 마음들에 깊은 인상과 정감을 느낀다. 외국인 교수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밝게 인사하는 그들에게서 인간미를 느끼기도 한다. 고려인사회에도 대화의 창구를 열고 싶어 설날 행사에 가서 한국 가곡을 불러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곳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이라는 처지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아직 편하게 식사나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가 없어 그러리라. 필자는 저녁이 되면 조용한 산책로를 찾아 썰렁한 벤치에 앉아 시를 쓰곤 한다. 무언가 아늑한 느낌보다는 삭막한 분위기가 낭만적인 감흥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아마 사막지대라 수목이 무성하게 자랄 수 없고 아직 도시 인프라가 잘 정비되지 않은 낙후된 도시 분위기가 더욱 썰렁하게 느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낯선 도시 크즐오르다에서”라는 시에서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도시/그리움의 끝자락에서/손을 흔들고 있는 그대를/어렴풋이 바라본다//홀로 식탁에 앉아/시어빠진 김치에 밥 한 그릇/억지로 우겨넣으며/잔소리를 하든/술주정을 하든/떠들어주던 무심했던 존재들을/비로소 가슴에 안는다//고독한 밤의 침묵이 목을 조일까/어둠이 깊어지기 전에/모국어 에프엠 방송을 켜고/피곤의 무게가 눈꺼풀을 눌러/압사시킬 때까지/귀를 쫑긋 세우며 듣는다//일상과 자유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미지의 속삭임을 찾아나선 길목을 지키며/이별이 아쉬워 술잔을 들이밀던/사랑하는 그대들을 떠나왔건만/무엇을 못 잊어 그리워하는가/대책 없는 동키호테여//해는 저물어 가는데/낯선 도시 녹슨 벤치에 앉아/읽어줄 사람 하나 없는 이국의 변방에서/시 한 줄을 끄적거리는데/황량한 거리 저편에서/그대는 작은 손을 흔들고 있다”라고 노래하였다.
필자는 카자흐스탄과 크즐오르다 공동체와 사람들과 깊은 정감을 나누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방인이라는 벽을 허물고 선린과 친구로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일 년이 지나 이곳을 떠날 때 헤어지기 아쉬워 손을 놓기 어려운 친구를 몇 명은 사귀고 싶다. 그리고 카작에 대한 좋은 시와 칼럼을 써서 이곳 한인사회와도 교감을 하고자 한다. 필자가 이글을 쓰는 것도 카자흐스탄과 크즐오르다에 더 가깝게 다가서고자 하는 몸부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