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긴 하품이 동에서 서로 걸려있다 잠시 쪽마루에 걸터앉은 해는 참나무 울타리에 걸린 강낭콩줄기처럼 시들하다 가끔 랩풍의 바람이 불면 장독대 옆 붓꽃은 본분을 알아차리고 먹을 친다 송아지는 몇 시간째 미동도 않고 껌을 씹고 있다 외양간 그늘엔 암탉들의 모래목욕이 한창이다 밤새 보초를 선 삽살이는 마루 밑에서 오침 중이다 하늘을 찌를 듯 칼을 갈던 삑삐기풀은 패장의 칼처럼 무디다 미루나무 한 그루 졸린 오후반 음악공부에 음표를 반짝거린다 앞에다 가방을 매단 자전거 한 대 지나간다 편지요, 허공에 대고 외치는 우체부 목소리에 놀라 깬 초목들 눈을 꿈뻑이더니 또다시 잠이 든다 다시 바람이 분다 울타리 밑 개박하향이 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