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정체성의 확립과 건국정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제의 잔재 청산에 따른 정체성 확립과 좌우로 대립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나라를 세워야 하는 건국정신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이룩해야 하는 혼돈과 창조의 격동기라 할 것이다.
어언 6학년이 되었다. 한글로 된 동화책도 읽었고 만화책도 보면서 자랐다. 원래부터 집안에 일본 책이라고는 교과서 한권 없던 집안이어서 일본어는 집안에서 깡그리 사라졌다. 가끔씩 튀어 나오는 말로 손톱깎이라는 말의 “쓰메끼리”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6.25가 났다. 등교한 학생들을 선생님이 집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학교에서 연락 할 때 까지 집에 있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 말에 왠지 불안하고 스산한 기분으로 교문을 나서는 순간 검은 비행기 한 대가 머리위로 아주 야트막하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권총으로 비행기를 향해 쏘아 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적기(敵機)라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집을 향해 뛰어 갔다. 두려움이 온 몸을 감돌았다.
이때부터 나는 본의 아니게 집안의 가장이어야 했다. 정부만 믿고 있다가 피란 갈 기회를 잃은 우리집안은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난 뒤부터는 완전히 암흑과 같은 집이 되고 말았다. 15~16세에 달한 형은 밖에 돌아다니다가 의용군으로 잡혀 갈까 두려웠고 선친은 인민군에 붙들려 인민재판에 회부될까 무서워 꼼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다락방에 숨어 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함께 숨 쉬는 공포의 시대였다고 할 것이다.
선친이 가리켜 준 대로 은수저를 책보에 끼거나 재봉틀을 등에 지고 관악산 밑 동네 자하동의 어느 집에 찾아가 쌀과 바꾸어 오곤 하였다. 9.28수복 때 까지 그렇게 나는 며칠에 한 번씩 수 십리 길을 등짐을 지고 집식구가 먹을 쌀을 구하는데 온 정성을 바쳤다. 생존이 시대정신이었다고 한다면 조금은 유치한 표현일까?
이런 나의 생활이 어찌 나만의 일이었을까? 또래의 아이들의 공통된 처지였을 것이다. 6.25때 가족들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섰던 나와 비슷한 세대는 그 앞의 모든 세대들이 해마다 겪은 “보릿고개”를 겪은 마지막 세대일는지도 모른다. 대학 2~3학년때 까지만 해도 “보리야 나와라!”라는 당시 유명한 경제학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봄철 등록금에 맞추어 굶기를 밥먹듯 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가난이 죄라 생각해 본적은 없다. 보리고개는 매년 겪는 통과 의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대의 아픔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대학 4학년이 되었다. 정치사도 읽었고 정치사상사도 배웠다. 민주주의와 헌법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배움은 강단에서의 것이지 실제의 것이 아니라는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도 허구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비아냥이 학교 캠퍼스 안에서는 어느 결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이승만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이기붕으로부터 나온다”처럼 말이다. 시대의 아픔이 서서히 곪아가기 시작한 셈이다. 이런 학원내 분위기도 모르면서 자유당정권은 3.15 정․부통령 선거를 무지막지한 부정선거로 치루었다. 학생들의 분노심과 아파하는 상처에 불을 댕긴 격이었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자유당 정권 물러나라!” 4.19혁명이 일어 난 것이다. 나 또한 그 맨 앞에 섰다. 돌아올 기약이 없는 데모대의 앞에 서서 선언문을 작성하여 낭독하고 구호도 외치면서 종로거리와 을지로 통을 동료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데모를 하였다.
한글 1세대가 민주화 1세대가 된 것이다. 이시대의 시대정신이야 말로 민주주의가 아니었겠는가?
4.19로 집권한 민주당이 당내 파벌싸움과 무능으로 더 이상 민주주의도 보릿고개도 해결하지 못하게 되자 얼마 되지 않아 5.16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터키 파카스탄 에집트 등 모든 후진국에서 쿠데타가 열병처럼 번져갔다. “군과 정치”라는 논문과 저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5.16군사 정부는 “기아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해결하고”로 시작되는 혁명공약을 발표하고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성안하여 산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간호사와 광부를 독일로 수출하였다. 이때부터 인력수출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다. 나와 대학동기인 어떤 친구는 군에 갔다 온 직후 독일광부를 자원하였다. 직장구할 데가 없었던 시절 이렇게 또래의 우리들은 대학졸업장에 구애 받지 않고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오늘의 우리 사회를 일구었다. 그 시대의 시대정신은 산업화가 아니었나 싶다.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전사로서 또래의 우리들은 누가 뭐라 해도 산업화의 1세대라고 자부 하고 싶다.
일제시대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한글1세대가 민주화의 1세대가 되고 산업화의 1세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고 해서 누가 감히 나무랄 것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 뿌듯한 요즈음이다. 그런데 또다시 우리는 종북좌파와 우파가 일으키는 갈등의 늪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대를 아파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시대는 아픔이라 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