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效率)과 효과(效果)가 어떻게 다른가? 그게 그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효율은 비율(比率)과 정도(程度)를 말 할 때 쓰는 말이고 효과는 그 결과를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여기서 效는 본받는다는 뜻이다. 비율과 결과를 말할 때 어느 것이 본(本)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기준(基準)이 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효율은 기계가 한 일의 양과 소요된 에너지(energy)와의 비율을 말하는 것이다. 쓰여진 노력(努力)에 대하여 얻어진 결과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효과는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보람 있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효율 또한 상대적(相對的)인 것이다. 절대적(絶對的)인 것이 아니다. 상대에 따라 처지(處地)와 환경(環境)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의 잣대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의 처지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효율을 말할 때도 상대적인 상황(狀況)이냐 절대적인 상황이냐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절대적인 상황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기준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가지 잣대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는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두 번 세 번 나누어 해서는 효율이 안 오르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상황에서는 효율만 주장(主張)할 수 없다. 효율도 생각해야 하지만 효과도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결과도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잘했다 해도 효과가 별로라면 잡음(雜音)이 일 수 있고 문책(問責)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상황에서는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 나의 주장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나의 주장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니 인정(認定)해야 한다. 나의 주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독선(獨善)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해득실(利害得失)로 인해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정자(爲政者)들은 한 분야의 정책성 효율성 못지않게 다양(多樣)한 분야에 대한 효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민의 공감(共感)을 얻기 위한 과정(過程)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책의 효율성만 따지고 국민의 공감을 외면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잡음과 분열(分裂)이 일 것이다. 잡음과 분열을 잠재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소통(疏通)능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이고 집단지성(集團知性)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이다. 다이버시티 인투 유니티(diversity into unity)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統一性)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솔로몬의 지혜(智慧)가 아쉬운 이유이다.
우리는 절대적인 상황 속에서 상대적인 효과를 수렴(收斂)해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다. 적대적(敵對的)인 상황도 고려해야 하고 다양한 계층의 소리도 의식(意識)해야 한다. 아니 수렴해야 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경청(傾聽)해야 한다. 경청이란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입을 닫고 귀를 여는 것이다.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에 귀 기울여야 한다. 모든 주장은 항상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는 원효스님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복수의 옳고 그름도 인정해야 사회도 발전한다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경청은 상대방을 사람대접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효율을 높이고 효과를 높이려면 에고(ego)를 초월해야 한다. 나를 앞세우는 에고를 버려야 하고 나를 팔려는 사심(私心)을 버려야 한다. 아니 초월(楚越)해야 한다.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를 생각해야 한다. 나라를 생각하고 나라의 생존(生存)을 생각해야 한다. 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면 나라는 어찌되겠는가? 명심(銘心)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