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학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썼다. 그것이 현재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주제를 잘 잡았다고 보여진다. 청춘은 아파하지 않고는 올수 없는 것이기에 말이다. 앓고 또 앓으면서 보내는 시간들의 주인공이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기도 하고 “청춘이니까 아프기도 한 것”이다. 아파보지 않은 청춘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청춘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불꽃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다. 오늘을 뛰어 넘기 위해서다. 어떤 보상도 대가(代價)도 바라지 않는다. 청춘이 겪는 아픔에는 약이 없다. 어쩌면 아픔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청춘일는지도 모른다. 청춘은 피가 끓어오르는 열병 속에서 익어 가게 마련이다. 아파 본적이 있는 자만이 청춘을 기억한다
시대도 마찬가지다. 아프니까 시대다. 아파하지 않고는 시대라는 말을 쓸 이유가 없다. 아픔 속에서 시대는 잉태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아픔을 통해 탄생한 시대를 시대정신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대정신은 아픔의 산물이다. 아프지 않고는 시대정신을 잉태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대적으로 같이 아파할 적에 시대정신은 탄생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오늘의 시대정신이 무엇일까로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있다. 어떠해야 하느냐로부터 어떠하냐고 묻는 데에 이르기 까지 앓고 또 앓으면서 산고나 다름없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도, 지금 살고 있는 시대도 또한 같다.
나는 나라가 없는 시대에 태어났다. 부모 없이 태어난 아기를 사생아라고 한다면 조국없이 태어난 애기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적절한 말이 없다. 망국아? 식민아? 그러나 그렇지 않다. 황공스럽게도(?) 나는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태어났다. 나는 1938년생이니 말이다. 36년에 부임한 일본의 총독 미나미(南次郞)가 황민화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일제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와, 한국사의 왜곡과 말살작업을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아픔이야 참으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씨개명에 저항하기 위해 황원(매천 황현의 동생)처럼 목숨을 버렸거나 견디다 못해 창씨개명을 하긴 했으나 “총독 미나미 지로오(南次郞) 네 놈의 형님이다. 이 개자식아!”와 같은 분노를 심어 “미나미 다로오(南太郞)”로 이름을 지었다가 혼찌검이 나는 소동도 벌어졌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었음이 눈으로 보는 듯하다.
허리에 책보를 두르고 학교에 가던 선친(先親)이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루셨던 증조부에게 들켰다. 낌새를 눈치 챈 증조부가 선친에게 물었다. “니 어데가노? 학교 가나? 니 왜놈될래?” 그 자리에서 책보가 부엌 아궁이로 들어가 불태워지는 장면을 본 선친은 그로부터 얼마 후 가출소년이 되어 있었다. 나는 5살이 되어서야 만주에 계시는 선친을 처음으로 만나 볼 수 있었다. 책보가 통째로 불살라지는 것도, 선친의 가출도 모두가 저항이었다.
태평양전쟁 중에 문경 농암으로 피란을 가 있었던 나는 일제 시대의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년도 채 안된 시점에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로 하여 다시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 하였으니 나는 명실상부한 한글1세대인 셈이다. 해방과 함께 찾아온 한글이다. 그러나 한글은 내 몸 안에서 언제나 살아 있었다. 조모님의 무릎 앞에서 자란 나는 조모님이 불러주시던 자장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가갸 가다가 거겨 거렁(개울의 사투리)에서 고교 고기잡아/나냐 나하고 너녀 너하고 나눠 먹자/”
한글1세대로 시작한 초등학교 생활이었지만 일제 때에 귀에 익혀둔 노래가 여전히 입속에 녹아 있었다. “갓데 구루마 방구 누가 뀌었나/ 집에 와서 생각하니 내가 뀌었네/”는 일본 군가 “이기고 돌아오라”를 각색한 것이고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태극기 그려놓고 천세 만세 부르자”는 노래는 징병 찬양가 중에서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어 부른 것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부른 것이지만 이 또한 왜정 때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저항의 노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일제 시대의 저항의식과 새 시대의 건국의식이 혼재해 있는 시대의 어린이로 자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