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0월 0일 경인일보 정치면 톱기사를 장식한 제목이다. 오0식 일당의 두목은 내 고향 포천 출신의 수원북고등학교 재학생이었다.
현장은 용주사 입구였다. 현장에서 수원경찰서 형사대에 체포되어 간 오0식 일당은 취조 형사에게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요즘 일선에서는 국군 장병들이 피를 흘리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데 전시의 공무원들은…그것도 기관장들이 근무 시간에 기관장회의를 빙자하여 절간 앞에서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술타령을 하다니 이거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의분을 참지 못해 폭력을 행사 했으니 용서하세요. 한번만….”
불시에 습격을 당한 수원 공무원들은 놀라서 귀청하고 기생들은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둥, 마는 둥 집으로 갔다. 수원시내에는 ‘오0식 일당’은 ‘홍길동’이란 소문이 쫙 퍼졌다.
기관장들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0식 일당은 착한 이웃을 괴롭히는 불량 폭력배가 아니라, 홍길동 같은 의혈 학생들’이라고 칭송이 높았다.
그 후, 오0식 씨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의정부시청, 평택군, 포천군청 모범공무원 근무를 하고 면장으로 정년퇴직하였다.
한 때, 학창 시절의 불장난으로는 그 위용이 대단하였다. ‘신문 톱기사로 떠들썩했던 수원 아까(빨간) 잠바 사건’은 7·80대 노년들 간에는 지금도 전설로 전한다.
서울 북부와 고교 세대를 주름잡던 ‘중동 샤탕’과 ‘샹하이’, ‘배재 골리라’, ‘대동 샤탕’, ‘성동공고 꼴뚜기’, ‘배추’ 등도 고교 폭력배 두목들로 명성을 날렸는데 이들은 모두 자기학교 운동선수를 보호하고 돕고 응원단장으로 맹활약을 하였으며 7·27 휴전 반대 데몬스트레이션을 선도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꼴뚜기가 일당을 끌고 포천에 왔다가 일당 중 6명이 귀향 중에 있던 ‘수원 아까잠바’ 1명의 팔에 골절상을 가하는 범칙을 범해 혼줄이나고 도망갔다는 설도 전했다. 골목대장으로 구읍다리를 지키던 정씨 형제 ‘0현’이 ‘대장장이’와 ‘쇠징박이’의 장날 싸움(격투기) 그리고 문0천 씨의 재미있는 술주정과 폭력 일화도 1940년대를 장거리(신읍)에 전해오던 폭력 이야기다.